마루 밑 아리에티(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넷플릭스에서 감상.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 따님이 볼만한 작품이길래 선택.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The Borrowers 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내가 어렸을 때 집의 틈새에서 사는 소인들이 인간들의 물건을 훔치면서 ‘빌린다’고 고집을 부리며 표현하는 내용들의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같은 원작인 듯.

감독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이다. 실력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클론이라고 들을 만큼 출중한데, 각본 능력만큼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수하지 않았는지 부족해서 그게 문제라는 감독. 각본은 다른 사람이 하면 되잖아?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그게 안되나 보다.

하여튼 덕분에 딱 미야자키 하야오의 젊은 시절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그러면서 산뜻한 작품이다. 소인의 아기자기한 삶을 볼 수 있고, 적당한 위기도 있고, 어린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며 어른들을 속이는 것과 비슷한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로맨스와 우정이 반반 섞인 주인공들 간의 순수한 관계도 묘미. 중간중간 나오는 컨트리 송 같은 노래도 좋은 느낌이다.

내 평점은 별 4개. 추천.

따님 왈. “왜 만화에는 아파서 시골에 쉬러 가는 게 많이 나와?”

붉은 돼지(紅の豚, 1992)

천공의 성 라퓨타로 대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절정기 때, 자기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가장 많이 담아낸 작품.

전직 군인이지만 조국과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낀 파일럿 포르코 롯소는 돼지의 모습으로 아드리아해에서 현상금 사냥을 하면서 살아간다. 포르코의 오랜 친구인 지나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파일럿들의 연모의 대상이자, 호텔 아드리아노의 운영자이다.

어느날 공적연합은 계속 포르코에게 당하는 것을 만회하고자 미국의 에이스 파일럿 도널드 커티스를 고용하고, 비행기를 수리하러 가던 포르코는 커티스에게 기습을 당해 격추 당한다.

포르코는 걱정하던 지나에게 “날지 않는 돼지는 그저 돼지일 뿐이지”라는 전화나 해서 지나를 화나게 한다. 포르코는 단골 항공기 제조사인 피콜로 사에 가서 새 비행기를 제작 의뢰하게 되고, 설계기사인 사장의 손녀 피오를 만나게 된다.

비행기는 준비되어 가지만, 이탈리아는 끝내 협조하지 않는 포르코를 체포하려 하고, 도망치기 위해 급하게 비행기를 이륙시키게 된다. 피오는 비행기의 완성 겸, 형식적인 인질이 되기 위해 포르코와 비행기에 같이 타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

옛 전우의 도움으로 아드리아해에 돌아온 포르코는 커티스와 피오를 걸고 리턴매치를 약속하게 된다. 그날 밤 포르코는 전쟁당시 친구들을 잃은 이야기를 피오에게 들려준다.

다음 날 무인도에서 공적연합의 주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포르코와 커티스의 대결이 펼쳐지고, 총알까지 다 쓴 둘은 주먹싸움까지 하게 된다. 겨우겨우 포르코가 이겼을 때, 지나의 비행기가 와 공군이 습격하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 행사는 끝난다. 포르코는 피오를 지나의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데 피오가 기습적으로 포르코에게 키스를 하며 떠나고, 포르코는 모자로 얼굴을 숨긴다. (사랑의 키스를 받은 동물로 변한 주인공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클리세를 연상시키려는 듯)

그 이후 각자 인물들의 뒷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야기는 끝.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가 좋아하는 소재들로 가득한 작품이다. 비행기, 악의는 없는 악당, 순수하고 능력있는 소녀, 구름, 바다, 그리고 전쟁과 파시즘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남자들의 로망인 공중전과 총질은 좋아하는 그런 작품. 이런 소재들을 세상에 지치고 사람이 싫어 은둔하는 중년 남자의 시각과 로망으로 그려냈다. 주인공이 소년 소녀가 아닌 얼마 안되는 작품. 그래서 그런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중에서 가장 남성 취향적이고, 중간중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비행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에는 항공기를 장인정신을 가지고 제작하는 과정이 나오고, 공중전도 실제 공중전 전술에 맞게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심지어 항공기와 구름들과의 상관관계도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 된다. 포르코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붉은 비행기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밖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나 그의 친구를 모티브로 포르코를 디자인 했다는 것, 지나의 성우를 담당한 카토 토키코라는 가수의 배경 등을 보면 작품내에 자신이 생각한 여러 의미를 함축하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벼워 보이고 웃기는 상황이 많은 작품이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이는 지도.

음악은 역시 히사이시 조가 담당해서 명랑한 장면과 세상을 등진 주인공의 고독함이 왔다갔다 하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ps. 이 작품은 90년대에 친구와 처음 보았는데, 그 친구와는 얼마전 크게 싸워 멀어지고 말았다. 애석하다.

ps. 어렸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돼지가 돈까스를 먹는다!라고 말이 나왔던 장면

고기 결로 봐서는 돈까스보다는 생선까스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ㅎㅎㅎ

ps. 9살인 따님이 얼마전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고 무척 재미있어했다. 돼지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재미있었던 듯.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 1979)

전부를 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평으로 루팡 3세 극장판 중 가장 재미있으면서 완성도 높을 작품이랄까.

초반 자동차 추격전도 대단하고, 중간중간 잠입과 액션 연출, 개그씬도 훌륭하다. 루팡이 좀 미래소년 코난과 스파이크 스피겔을 반반 섞은 것 처럼 묘사되지만 캐릭터들도 꽤 괜찮게 나왔고.

미야자키 하야오 다운 폭력적이지만 잔인하지 않은 연출이나, 오버액션, 만화적인 메카닉 연출 등이 있지만, 작품과는 잘 어울리니 패스. 70년대 작품인걸 생각하면 오히려 리얼리티 쩌는 것일 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 떴다. 안보신 분들은 꼭 보기를. 자막은 한국어가 있지만, 음성은 영어와 일본어 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

미야자키 하야오 / 학산문화사 / 전 7권 / 정가 3만5천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첫 극장판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 앞에선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나우시카가 희생을 통해 자연의 분노를 잠재우고 메시아로 부활하는 장면을 클라이막스로 연출하고 있지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그려서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비슷하지만 1권 중간부터 점차 애니매이션과 다르게 나가기 시작합니다. 크샤나 공주는 벌레에게 당한 불구도 아니고 증오의 화신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우시카의 지지자이고, 부하를 아끼는 용기와 결단있는 지도자입니다. 유파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수사관이며 희생을 하여 모두를 지키는 ‘간달프’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그리고 내용상의 위협은 크샤나나 토르메키아와 페지테의 갈등이 아니라 애니매이션에서는 나오지 않은 토르크라는 아랍분위기의 제국이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낸 유전공학적인 괴물과 재해입니다.

주인공 나우시카도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녀의 여정은 당장의 계곡사람들 구하려는 애니에서의 길보다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서 세상의 사람들을 구하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람계곡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나우시카의 즉흥적이고 자비가 넘치는 성격은 그대로지만 잔혹한 현실들을 깨닫고 점차 성장해가는 부분도 다릅니다.  그녀는 결국 부해나 곤충같은 거대한 자연도 과거의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 무기였으며, 현재 살아남은 인간들도 유전적으로 만들어져 독에 어느정도 견딜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토르크에 남아 있는 유물은 부해가 세상을 다 정화하고 나면 새로운 인류와 문화를 만들어낼 장치였고요. 나우시카는 그런 운명을 거부하고 남겨진 유물들을 파괴해버립니다. 설사 현재 인간들이 개조된 인간이고 멸망할 운명이라고 해도 생명은 그런것이 아니라고 외치면서요.

만화판은 애니매이션처럼 대놓고 인간은 나쁘고 자연은 위대하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주장하지만, 인간도 그 자연의 순리임을 나지막히 말하면서 여러 용기를 표현합니다. 특히 애니매이션처럼 ‘운명’이나 ‘예언’에 지나치게 묶여있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스케일이 더 크고, 더 다양한 인물들과 나라들이 묘사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구요. 다만 토르크 제국 내에서는 상당히 징그러운 묘사들이 많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기대하는 분들에겐 비추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통해 대화하는 방법’이나 여러 초능력들을 가면 갈수록 연출을 위한 편의도구로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전체적인 완성도에 비하면 좀 아쉽습니다.

ps.
살이 썩어서 떨어져 내리는 거신병이 나우시카를 ‘엄마’라고 부르며 보호해주고, 적을 초토화 시키고 다니는건 참 괴기스럽습니다. “라퓨타”에서 시타를 지키던 로봇 이미지와 에반겔리온의 초호기 이미지를 그대로 합성시킨듯한 모습이지요. 나우시카 만화판을 보면 에반겔리온이 ‘거신병’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ps.
마지막 권 에필로그에서 나우시카가 토르크에 머물르다 계곡으로 돌아갔다느니 숲으로 들어갔다느니 하는 글은, 반지의 제왕 소설판 부록에서 아라곤이 죽은 후의 아르웬을 표현한 글과 왠지 느낌이 비슷하군요. 좀 슬픈 느낌입니다.

게다가 결혼이나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이 없는걸로 보아 처녀로 늙은거 같아요…-_-;

벼랑위의 포뇨를 늦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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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벼랑위의 포뇨를 뒤늦게 봤습니다. 거의 끝물이라 극장들이 별로 안 돌리더군요. 겨우겨우 작은 스크린의 극장에서 더빙판을 봤습니다. 100명정도 들어갈 극장인데, 8명정도와 같이 봐서 좀 추웠습니다. ^^;

일단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캐릭터들의 귀여움은 역대 미야자키의 작품들 중에서 꼽아봐도 토토로 뺨칠정도로 최강습니다. 무엇을 해도 귀엽고, 햄 편식인 포뇨와, 포뇨가 좋아 지켜주는 소스케, 그리고 때로는 귀엽지만 강할때는 강한 엄마까지. (아빠가 안들어온다고 엄마가 투정부리는건…..정말 귀엽습니다…빠가빠가빠가빠가~~)게다가 이야기도 평이해서 생각하는 영화를 싫어하는 여친에게 보여주기 딱이었구요.

더빙판을 들어보니, 포뇨와 소스케는 아이들이 녹음했고, 그 외에는 유명한 정미숙씨(소스케 엄마)등 프로 성우들이 녹음했더군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오디션 해서 녹음시켰으면 좀 아이들 같은 성우를 쓸것이지, 이미 연기력과 목소리까지 탁 트여서 프로 성우라고 해도 될정도인 애들을 썼더라구요. 그게 좀 아쉬웠을뿐, 더빙은 훌륭했습니다.

아, 놀랐던것은… ‘소스케’라든지 하는 일본 이름이나 일본 글자들을 전혀 바꾸지 않고 더빙을 한것이었습니다. 더빙판이라는걸 어렸을때 주로 TV를 통해서 봐와서 적응이 안되더군요 ^^;

하지만 많은 분들이…벼랑위의 포뇨는 호불호가 갈릴거로 예상됩니다. 우선 ‘손으로만 작업했다는’ 작화가 정감있고 자연스럽고 귀엽기는 하지만,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가 계속 발전시켜 왔던 정교함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토토로보다도 더 동화책같은 느낌의 그림이에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기대하셨던 분들은 실망하실수도 있겠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의 공통점은 요리하고 먹는 장면과 할머니들 나온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너무 평이한 것도 문제는 문제입니다. “벼랑위의 포뇨”가 아무리 아동 애니매이션을 추구했다지만, 스릴이라고는 소스케가 바람에 잠깐 날린것과 포뇨가 졸려서 쓰러지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애니매이션이 요즘 애들에게 재미를 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주제도 뭘 이야기 하려는지 좀 애매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건 알겠는데…

그래도…뭐 이래저래 불만은 써놨지만….저는 웃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극장에서 나왔습니다.

포뇨~ 포뇨~ 포뇨~ 아기물고기 저 푸른 바다에서 찾아왔어요!
포뇨~ 포뇨~ 포뇨~ 오동통통 볼록한 배에 예쁜 물고기~

ps.
여자친구는 계속 둘리랑 헤깔려서 “포뇨~ 포뇨~ 포뇨~ 아기공룡 포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_-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 戰記, 2006)

원래 환타지나 SF영화를 볼때는 몇몇 부분이 이해가 안되도 ‘그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는게? 예의이긴 합니다. 반지의 제왕같이 영화화를 나름 잘했다는 평을 듣는 작품도 영화의 상영시간안에 몇권짜리 책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 애니, 게드전기의 경우는 그게 도를 넘었습니다. 아렌은 왜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지, 그림자는 무엇인지, 왜 세상이 막장 분위기인지, 게드는 어떤 인물이며 마법사는 무엇인지, 테나는 게드랑 무슨 관계인지, 테루는 왜 저리 삐쳤는지, 거미는 왜 아렌을 가지고 노는지, 계속 등장하는 벼랑에서 보는 노을은 무엇인지, 왜 용이 인간으로 변신하고 있었던건지, 세상 망하거나 마법이 사라진건 해결 안하고 뭐하는건지, 무엇하나 설명이 되는게 없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은 고작 느긋하게 농사지으며 게드가 설명해주는 마법의 원리(진짜 이름을 사용해 명령을 내리는)와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죠. 설명이 부실한걸 원작을 보고 알수 있으면 다행이긴 한데, 들은바로는 원작과도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뭔가 이야기의 실마리나 구심점이 되야할 악당 거미도 뭐 그저그런 욕심만 앞서는 악당일 뿐이고, 부하들은 흔하디흔한 소인배입니다. 숙적을 처형하는데 날짜 정해서 미루다가 주인공에게 당한다라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 전개와 그저 도망만 치다 죽는 운명을 가졌죠. 그리고 악당 죽였다고 모든게 해결되어 버리고, 두 남녀 주인공들이 좋아하게 되는것도 유치합니다. 심각한 분위기로 치면 거의 원령공주급인데, 캐릭터나 이야기 진행이 전부 유치하거나 어설프니 되는게 없습니다. 분위기에 밸런스를 맞춰줄 코믹한 장면도 수다쟁이 아줌마들이나 게드가 얼굴 변신시키는 부분 뿐이라 아쉬웠습니다.

이 애니는 참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팬들에게는 고로 감독이 역시 아버지만큼은 못된다는 평을, 원작인 어슐러 르귄의 소설 팬들에게는 원작과 너무 다르다거나, 주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일본 애니매이션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몇몇 OVA나 극장판들을 제외하고는 너무 상업적이기만한 작품들이 많고, 그나마 작품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춘것이 지부리의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지브리가 감독들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났죠.

이 작품의 좋은 점을 꼽으라면, 역시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수 있는 멋진 풍경(그림의 디테일은 최근 작품보다 못하지만), 깔끔한 캐릭터 디자인, 은근히 흡인력 있는 음악 정도입니다. 특히 하이타카의 테마곡이나 하이타카가 아렌과 만난 다음날 길을 갈때 나오는 음악은 제가 잠시 중독을 일으킬 정도로 좋았습니다.

캐릭터 디자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거미의 직속 부하 디자인은 아무래도 나우시카의 ‘크샤나’공주의 부하와 너무 똑같군요. 하는 짓은 더 얍삽하지만 말입니다. 마약장수 할아버지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서 나왔던 중과 같은 디자인이고 말입니다.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만나러 와도 되냐면서 묻고 헤어지는 장면도 원령공주의 엔딩과 너무 같습니다.

어째튼 지브리 스튜디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서 안정된 작품을 만들길 바라면서 아쉬움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작품인 “절벽 위의 포뇨”도 기대됩니다.

ps. 우리나라 더빙으로 볼때는 ‘게드’였는데, 일본어 더빙에서는 ‘하이타카’군요. 간달프처럼 이름이 여러개인걸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왜 일본과 다른 이름으로 더빙했을까요. 이래저래 궁금한게 많아서 조금이라도 이해할려면 기회가 되는데로 원작 소설을 사 봐야겠습니다.

ps. 이름의 경우는 찾아봤더니 ‘게드’는 진정한 이름이고(신뢰하는 사람 외에 알려줘선 안됨), 평상시 사용하는 이름이 Sparrowhawk인데, 이것을 우리 말로는 “새매”라고 번역하고, 일본어로는 “하이타카”라고 번역한다고 합니다. 그럼 애니의 한국어 더빙판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게드라고 부르던데, 가까운 사람외에는 알면 안되는 이름이니 잘못된 것이군요.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1995)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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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매이션 “고양이의 보은”을 기억하는가? 이상하게 “라퓨타”를 몰라도 “고양이의 보은”은 아는 분이 많더라. 이게 제대로된 극장 개봉의 힘인가 보다.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바론 남작이라는 고양이는 “귀를 기울이면”에서 나오는 인형으로, 주인공 시즈쿠가 그걸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는다. 즉, “고양이의 보은”은 “귀를 기울이면”의 스핀오프 작품이다.(조수인 뚱보 고양이도 같이 나온다)

중학 3학년생 ‘스키시마 시즈쿠’는 도서관 직원인 아버지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어머니, 독립을 준비중인 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시즈쿠는 이제 곧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어야 하지만, 너그러운 가풍덕에 독서에 열중이다. 그러던중 독서카드를 보고 자신보다 모든 책을 먼저 빌린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다. 어느날 친구들에게 줄 ‘컨트리 로드’노래 번역과 장난스러운 개사곡인 ‘콘크리트 로드’를 전해주다가 스즈쿠는 실수로 학교에 책을 놓고 오고, 어떤 남자아이에게 놀림을 받아 화가 난다.
시즈쿠는 아버지의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러 가는 길에, 전철을 타고 가는 뚱보고양이를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골동품 가게를 발견한다. 거기에서 남작이라는 멋진 고양이 인형과 공예품 장인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도시락을 잊고 가게 되는데, 이전의 그 남자아이가 약올리면서 도시락을 전해주는게 아닌가. 그가 바로 그 장인 할아버지의 손자였다.
시즈쿠는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 학우와 대화를 하다가 오히려 고백을 받아버려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다가 틈만 나면 그 남작 인형을 보러 가는데, 그러다 자신을 약올리던 남자아이와 만나 집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 소년은 그집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가 바로 시즈쿠의 주의를 끌려고 책을 전부 빌린 ‘마마사와 세이지’였다.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시즈쿠는 세이지가 열심히 자기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불안해진다.
시즈쿠는 남작 인형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기로 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물리치며 공부를 밀어놓고 집필에 열중한다. 결국 완성된 소설을 읽은 할아버지는 아직 다듬지 않은 보석의 원석에 시즈쿠를 비유하며 원석을 선물로 주고, 인형에 얽힌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다음날 새벽,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세이지는 시즈쿠를 불러내어 떠오르는 태양을 보여주며 청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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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를 보고나서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나 자신도 어렸을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고,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을 취미로만 생각했지 재능의 발굴로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 시즈쿠와 세이지는 고등학교가면서 진로를 어느정도 결정해야 하는 일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개발하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할만한 애니랄까?

이 애니는 여름날의 비오는 풍경이나 주택가, 강가,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무척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마음에 든 애니이다. “초속 5센티미터”같은 슈퍼 울트라 세밀함은 아닐지라도 특징을 잘 잡아낸 표현이랄까? 그러고 보니 일본 애니에서 나오는 지하철이나 건물, 학교 등의 묘사는 왜 이리 우리나라랑 비슷한지 모르겠다. 같은 문화권이라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아니면 디자인을 우리나라에서 많이 참고(?)해서 건축을 하는 것일까?

이 애니매이션은 그림 스타일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으로 많이 오해받는데, 사실은 그는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고, 감독은 콘도 요시후미라는 사람이다. 그가 몇년후에 죽어서 유작이라고 한다.

이번에 늦게나마 개봉한다는 “마녀 배달부 키키”와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90년대 가장 히트한 작품들이다. “귀를 기울이면”은 당해년도 자국산영화중 일본 흥행 1위였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인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일본의 꿈과 낭만을 상징하는 지브리의 대표 흥행작들이라니, 참 아이러니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1989)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꼬마 마녀 키키는 마녀지만 아직 어리광피우길 좋아하고 자신의 검은 고양이 ‘지지’와 대화하는 것과 어설프게 여기저기 충돌하며 빗자루로 날아다니는 것외에는 할줄 모르는 초보 마녀이다. 그러나 13살이 되면 마녀 수행을 위해 독립해야 한다는 전통에 따라 밤에 여행을 떠난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항구도시를 향해 날아가던 키키를 반기는 것은 일기 예보에도 없던 폭우. 고생끝에 원하던 항구 도시에 도착하지만, 낮선 도시에서 교통 혼란을 초래하고, 어린이 혼자서 묵을 곳을 마련하기 힘든 등 되는 일이 없다. 결국 친절한 빵집 아줌마 오소노 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비행능력을 이용해 배달일을 하면서 힘든 도시 생활을 시작한다.

첫배달은 멋진 옆집 커리어 우먼의 부탁으로 친척집의 선물을 가져다 주는 일. 유유히 날다가 돌풍으로 선물을 떨어트리고, 까마귀때문에 선물을 도로 찾는데 고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덕분에 숲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이름이 나왔던가?)와도 알게 된다. 손녀를 위해 파이를 굽는 마음씨 자상한 할머니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파이를 배달하던 도중 비를 만나 완전히 젖게 되고, 교통 혼란을 일으켰을때 알게된 톰보라는 소년의 파티 초대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그 파티가 파이 배달한 곳인거 같지만…) 결국 감기에 걸려 심하게 고생하고 만다.

고생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마력을 잃어 날지 못하게 되고 빗자루도 부러지면서 키키는 모든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던중 마을로 찾아온 그림 그리는 여자와 숲의 집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여러가지 조언을 얻게 된다. 그후 마을로 돌아가 파이를 굽던 할머니집에서 TV를 보던중 친하게 지내던 톰보가 비행선 사고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달려나간 키키는,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를 빌려 다시 날아 오르게 되어 겨우 톰보를 구출하게 된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이야기가 굵직하지 않고 잔잔해서 요약하려고 하면 오히려 수다 같이 되어버리는것 같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바로 이어서 시작한 극장 애니매이션이다. 라퓨타에 비하면 스케일도 작고 여성스러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키키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이나 사춘기적인 방황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연출에는 훨씬 어려움이 많았을거 같은 작품이다. 그런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인지, 키키 주변에 ‘착하고 명랑한 주변인’들이 너무 많아서 약간 깨는 면이 있다. -_-;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 애니매이션중 가장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이 꼬마 마녀라는 점과 사람들이 마녀에 대해 안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매우 현실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폭력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애니매이션이기도 하다. 그리고 메카닉에 대한 표현이나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메시지가 가장 최소화된 애니매이션이기도 하다. ‘일해서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하에서 성장 이야기를 다룬 애니매이션이기도 하다. 영화 초기에 키키가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 ‘이 도시에 다른 마녀가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나’같은거 일정도 -_-; 하지만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키키의 비행, 푸른 하늘과 깨끗한 뭉게구름,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 역시 미야카지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아, 그리고 여주인공의 팬티가 수시로 나오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할거다. ㅋㅋㅋ

이번달 22일에 이 영화가 메가박스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18년이나 걸려서 개봉하다니, 아무리 일본이 미워서 그동안 금지했던 거라지만 좀 심했다(?). 작품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비슷한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흥행이 비슷하게 흥행이 될지, 아니면 이미 볼사람은 다 봐서 망할지는 지켜봐야 할거 같다. 설마 DVD출시만 염두에 두고 변두리 극장에서 1주일만 상영하는건 아니겠지? -_-;

ps. 영어판 제목은 “Kiki’s Delivery Service”, 키키의 목소리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스파이더맨”시리즈의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를 했다고 한다. 확실히 아역일때도 연기력은 최강이었지.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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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서 일하던 소년 파즈는 어느날 밤 하늘에서 빛을 내며 천천히 떨어지는 소녀를 구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시타’. 가문에서 전해지던 하늘을 날게 해주는 보석 ‘비행석’때문에 무스카라는 군대 지휘관에 의해 납치되었었다. 그러다가 도라 일당이라는 공중해적들의 습격에 의해 비행선에서 떨어진 것. 파즈는 시타를 도와서 도라 일당과 군인들에게서 도망치다가 끝내 군에 잡히게 된다.

무스카는 시타를 협박하여 파즈를 돌려보내고, 그녀를 이용해 천공의 성 라퓨타로 갈 생각을 한다. 그녀는 사실 라퓨타의 왕가의 공주였으며, 비행석은 그 징표로 라퓨타를 깨어나게 하는 힘을 가진것이었다. 그러나 비행석을 깨우는 과정에서 라퓨타의 로봇이 깨어나 군의 요새를 폭격하게 되고, 도라 일당과 파즈의 협력으로 시타를 구해내게 된다.

무스카는 시타를 빼앗겼지만, 남아 있던 비행석을 이용해 라퓨타로 향하고, 도라 일당과 손잡은 파즈와 시타는 그 뒤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폭풍에 휘말려 도라의 비행선은 난파하고, 파즈와 시타는 라퓨타에 착륙하게 된다. 오랜세월 사람에게 버려진 라퓨타는 이미 나무와 풀로 뒤덮힌 상태였다. 무스카는 라퓨타를 작동시켜 군을 배신하고 세계를 정복할 야욕을 불태우고, 파즈는 다시 잡힌 시타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파즈와 시타는 라퓨타를 파괴하는 주문을 써 무스카를 물리치고 다시 광산마을로 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만든 첫작품이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이다. 라퓨타는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공중에 떠 있는 섬인데, 여기에 고대 초과학 문명설과 성경, 인도 전설등을 결합해서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가 좋아하는 비행, 파란 하늘, 구름에 대한 동경이 최대한 녹아있는 작품이다. 80년대 작품이지만, 하늘과 구름을 가장 잘 표현한 애니매이션으로 유명하다. 그외에 라퓨타의 붕괴장면도 CG가 없던 시절로서는 대단한 표현중 하나다.

천공의 성 라퓨타가 다른 그의 작품과 다른 점은, 여주인공이 보호만을 받는 존재라는 점과 남자주인공의 비교적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처럼 ‘초과학의 열쇠가 되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지키는 용기있고 순수한 마음의 소년’이라는 주인공 설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파즈가 코난보다 좀 지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 상당히 닮은 꼴에 닮은 행동을 보인다.

라퓨타에서 기술은 동경하지만 인간미를 잃지 않는 주인공들은 라퓨타의 붕괴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못했던 악당은 스스로나 서로 서로 죽게 된다. 아무리 성을 하늘에 띄우는 기술로도 땅이 없이는 살수 없다는 결론과 마지막의 거대한 나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우시카와 미래소년 코난에서 보여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에 도달하기 까지 그려진 수많은 비행기와 전쟁무기, 전투, 그러면서 피 한방울 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연과 평화가 좋지만 비행기와 무기는 동경해”라는 그와 수많은 매니아들(나를 포함)의 모순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일까?

라퓨타의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담당해서 라퓨타의 신비로우면서 아련한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훗날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와 ‘비행석’, 설정을 그대로 따서 해저2만리와 창세기, 아틀란티스 전설등과 합쳐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완성하기도 했다.

덧. 2020-10
만8살인 우리 따님이 넷플릭스에서 재미있게 감상 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최근 “미래소년 코난”을 다시 감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어렸을 때 코난을 보며 코난과 라나를 걱정하고 즐거워하며 봤던 추억이 되살아 나고 있지요.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추억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매이션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처음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입니다.

어느 미래, 불의 7일간이라는 전쟁으로 모든 문명과 자연이 파괴되고 천년이 지났습니다. 세상은 곰팡이와 비슷한 균류식물들이 지배하고 있고, 부해라는 이 균류의 숲은 맹독을 뿜어내어 거대곤충만이 살수 있고, 인간은 전멸의 직전에 있습니다. 숲을 인간이 태우려 하면 오무라는 거대한 벌레가 폭주해 인간들을 파멸시켜버립니다. 이 오무의 껍질은 너무 단단해 인간의 무기로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전멸의 공포에 휩싸여 계속 부해를 태우려하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일삼습니다.

바람계곡이라는 계곡은 바다 바람의 영향으로 독기운이 닿지 않으며, 맑은 지하수가 나와 인간들이 경작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소왕국입니다. 부해가 근처에 있지만, 거기에서 평화롭게 필요한 재료를 얻을 뿐, 부해를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런 조그만 나라의 공주가 나우시카입니다. 나우시카는 어려서 부터 곤충과 부해와 친하게 지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용기와 무용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군사대국 도르키메니아의 수송선이 바람계곡을 지나가다 추락을 하고 맙니다. 추락현장을 달려간 나우시카에게 페지테라는 나라의 공주인 라스텔이 죽어가며 짐을 태우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리고 곧 도르키메니아의 군대가 들이닥쳐 바람계곡을 점령해버립니다.

그들은 페지테를 습격하여 과거 불의 7일간에 사용했던 거신병(에반겔리온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의 고치를 꺼내오려다가 수송선이 바람계곡에 추락했고, 군대가 그것을 되찾으러 온 것입니다. 나우시카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나우시카는 인질이 되어 도르키메니아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도중에 페지테의 왕자 아스벨이 비행정들을 습격 하게 되고 나우시카와 아스벨은 부해에 추락을 합니다. 그리고 헤매던 도중, 두 사람은 “부해가 세상에 남은 오염을 정화시켜 맑은 물과 흙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독을 뿜는것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과 전쟁이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우시카의 소형 비행글라이더를 수리해 돌아가게 되고, 도르키메니아의 크샤나는 거신병을 부활시켜 권력을 찾으려 하고, 페지테는 오무를 화나게 하여 도르키메니아 군대가 있는 바람계곡을 파멸시켜 복수하려 합니다. 나우시카가 인간의 원죄와 부해의 의미를 설명해도 아무도 듣지 않고, 거신병의 공격에도 오무는 계속 전진하고, 바람계곡의 앞에 도달합니다. 나우시카는 오무의 화를 막으려 달려드는 오무의 앞에 서고, 깔려 죽고 맙니다. 하지만 오무는 그녀의 희생을 알고 멈추게 되고, 그녀를 부활시켜 줍니다. 그녀의 희생으로 인해 다시 바람계곡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1984년작, 감독/원작/시나리오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타카하타 이사오, 음악 히사이시 조.
원래 이 애니매이션은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개인적으로 연재하던 장편 만화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애니매이션화 한것입니다.

인간의 자연파괴와 자연의 역습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속되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내용과 등장인물, 몇몇 장면이 미래소년 코난과 매우 흡사하기도 합니다. 7일간의 전쟁, 나우시카의 희생과 부활등은 구세주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꾸준히 보여주는 비행에 대한 갈망도 잘 나와 있죠. 그래서 칼과 갑옷으로 싸우는 시대에도 항공기술만은 수준급인 세계입니다. 제 친한 친구는 어렸을 때 나우시카의 제트엔진 달린 글라이더가 좋아서 항공대를 지워했고, 나중에 꼭 제작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지요.

저는 이 애니매이션을 고등학교때 몇몇 인쇄물로 보았고 대학생때 나우누리의 모 애니매이션 동호회 상영회때 처음 보았습니다. 작년인가 극장에서 상영을 하기도 했죠. 84년작 답지 않게 훌륭한 액션과 꾸준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개, 인물들의 갈등을 짧은 시간에 적절히 표현하는 멋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