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엑자일(LAST EXIL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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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엑자일. 광활한 푸른 하늘과 그를 배경으로 함포전을 하는 공중전함들, 그리고 꽤 전형적이지만 그래도 매력 있는 캐릭터들, 초현대와 구식 증기기관을 아우르는 감성적인 테크놀로지 등등 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애니매이션이었습니다. 넓은 푸른 하늘에 흰구름 둥둥…그런 장면을 좋아하시고 약간의 밀리터리 매니아 성향이 있는 분들께는 추천할만한 애니입니다.

용두사미라는 평을 받는 곤조의 10주년 애니입니다만, 이번에는 뱀꼬리까진 아니고 악어 꼬리는 되겠네요. 약간 미진하고 어이없는 캐릭터들의 죽음이 이어지지만 봐 줄만 했습니다. 마지막의 함장 알렉스 로우의 한 손으로 목졸라 죽이기는… 다스베이더의 포스 그립 보다 더 무시무시했습니다.

주인공 클라우스는 이래저래 모든 여자 캐릭터들과 (게다가 몇몇 남자 캐릭터들도…) 엮이기만 하면 호감을 얻는군요. 게다가 주인공이 전형적인 ‘불의에 대한 정의감은 있지만 여자에겐 상냥하고 유유부단한’ 캐릭터라 중간까진 하렘물 분위기가 물씬… -_-;;; 야한건 하나도 없지만…

그리고 참 여러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애니네요.

창공을 날아다니거나 공중전함이 등장하고, 남녀 주인공이 같이 날아가다 해적스러운(-_-) 배에 탄다는 요소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연상되고, 고대의 초과학 유물이나 그것을 여는 열쇠가 여자아이라는 것은 ‘천공의 성 라퓨타’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연상됩니다. 특히 비밀의 전함 실바나, 과거의 복수에 집착하는 어두운 함장, 지적이면서 함장을 사모하는 여성 부함장, 연륜이 있는 기관장이라는 조합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딱 연상되네요.  함장 알렉스 로우나 기타 신의를 지키는 남성 캐릭터들은 ‘하록선장’을 연상시키고, 환경이 인간들을 살기 힘들게 하고 있다거나 말대신 큰 새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상시킵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물질로 공중전함을 만든다거나 하는 건 ‘에스카플로네’를 연상시키고, 특히 살짝 맛이 간 데다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디오는 ‘에스카플로네’의 디란두를 연상시킵니다. 청음을 통해 주변을 살핀다거나, 소형 전투기를 내보내 함대전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등의 요소는 같은 곤조의 데뷔작인 ‘청의 6호’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여주인공 라비 헤드의 모습도 ‘청의 6호’의 여주인공 키노랑 거의 외모가 비슷하고, 함장 알렉스 로우의 모습도 ‘청의 6호’의 하야미 테츠와 살짝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이미 7년이나 되어서, 이걸 감상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추억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애매하지만…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최근 곤조의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고생 중이라던데, 어떤지 모르겠군요.

ps.
마지막 장면에서 몇년 지나서 소총수 멀린 세트란드와 듀나 시어 사이에서 2세가 태어나 무등태우고 놀 정도로 성장한 걸 알 수 있습니다만, 그때까지 알비스 해밀턴(아르)는 거의 성장하질 않았군요. 음…원래 그게 다 큰 건가!!

ps.
각 에피소드 중간 쯤에 성우들이 ‘라스트 엑자일’이라고 제목을 두번씩 읽습니다(아마 TV판이라 광고시간에 해당하는 부분인듯).
그런데 각 성우별로 발음이 틀려요. “라스토 에그자일” “라스트 엑그자일”등등 일본식 발음인데 가끔 “라스트 엑자일”이라고 발음하는 성우도 있고 한 여성 성우는 거의 본토 발음이더군요. 음…역시 일본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영어를 못하는 구나…생각했음 ㅋㅋㅋ

ps.
구글 번역기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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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

미야자키 하야오 / 학산문화사 / 전 7권 / 정가 3만5천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첫 극장판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 앞에선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나우시카가 희생을 통해 자연의 분노를 잠재우고 메시아로 부활하는 장면을 클라이막스로 연출하고 있지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그려서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비슷하지만 1권 중간부터 점차 애니매이션과 다르게 나가기 시작합니다. 크샤나 공주는 벌레에게 당한 불구도 아니고 증오의 화신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우시카의 지지자이고, 부하를 아끼는 용기와 결단있는 지도자입니다. 유파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수사관이며 희생을 하여 모두를 지키는 ‘간달프’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그리고 내용상의 위협은 크샤나나 토르메키아와 페지테의 갈등이 아니라 애니매이션에서는 나오지 않은 토르크라는 아랍분위기의 제국이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낸 유전공학적인 괴물과 재해입니다.

주인공 나우시카도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녀의 여정은 당장의 계곡사람들 구하려는 애니에서의 길보다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서 세상의 사람들을 구하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람계곡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나우시카의 즉흥적이고 자비가 넘치는 성격은 그대로지만 잔혹한 현실들을 깨닫고 점차 성장해가는 부분도 다릅니다.  그녀는 결국 부해나 곤충같은 거대한 자연도 과거의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 무기였으며, 현재 살아남은 인간들도 유전적으로 만들어져 독에 어느정도 견딜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토르크에 남아 있는 유물은 부해가 세상을 다 정화하고 나면 새로운 인류와 문화를 만들어낼 장치였고요. 나우시카는 그런 운명을 거부하고 남겨진 유물들을 파괴해버립니다. 설사 현재 인간들이 개조된 인간이고 멸망할 운명이라고 해도 생명은 그런것이 아니라고 외치면서요.

만화판은 애니매이션처럼 대놓고 인간은 나쁘고 자연은 위대하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주장하지만, 인간도 그 자연의 순리임을 나지막히 말하면서 여러 용기를 표현합니다. 특히 애니매이션처럼 ‘운명’이나 ‘예언’에 지나치게 묶여있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스케일이 더 크고, 더 다양한 인물들과 나라들이 묘사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구요. 다만 토르크 제국 내에서는 상당히 징그러운 묘사들이 많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기대하는 분들에겐 비추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통해 대화하는 방법’이나 여러 초능력들을 가면 갈수록 연출을 위한 편의도구로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전체적인 완성도에 비하면 좀 아쉽습니다.

ps.
살이 썩어서 떨어져 내리는 거신병이 나우시카를 ‘엄마’라고 부르며 보호해주고, 적을 초토화 시키고 다니는건 참 괴기스럽습니다. “라퓨타”에서 시타를 지키던 로봇 이미지와 에반겔리온의 초호기 이미지를 그대로 합성시킨듯한 모습이지요. 나우시카 만화판을 보면 에반겔리온이 ‘거신병’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ps.
마지막 권 에필로그에서 나우시카가 토르크에 머물르다 계곡으로 돌아갔다느니 숲으로 들어갔다느니 하는 글은, 반지의 제왕 소설판 부록에서 아라곤이 죽은 후의 아르웬을 표현한 글과 왠지 느낌이 비슷하군요. 좀 슬픈 느낌입니다.

게다가 결혼이나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이 없는걸로 보아 처녀로 늙은거 같아요…-_-;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최근 “미래소년 코난”을 다시 감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어렸을 때 코난을 보며 코난과 라나를 걱정하고 즐거워하며 봤던 추억이 되살아 나고 있지요.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추억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매이션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처음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입니다.

어느 미래, 불의 7일간이라는 전쟁으로 모든 문명과 자연이 파괴되고 천년이 지났습니다. 세상은 곰팡이와 비슷한 균류식물들이 지배하고 있고, 부해라는 이 균류의 숲은 맹독을 뿜어내어 거대곤충만이 살수 있고, 인간은 전멸의 직전에 있습니다. 숲을 인간이 태우려 하면 오무라는 거대한 벌레가 폭주해 인간들을 파멸시켜버립니다. 이 오무의 껍질은 너무 단단해 인간의 무기로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전멸의 공포에 휩싸여 계속 부해를 태우려하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일삼습니다.

바람계곡이라는 계곡은 바다 바람의 영향으로 독기운이 닿지 않으며, 맑은 지하수가 나와 인간들이 경작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소왕국입니다. 부해가 근처에 있지만, 거기에서 평화롭게 필요한 재료를 얻을 뿐, 부해를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런 조그만 나라의 공주가 나우시카입니다. 나우시카는 어려서 부터 곤충과 부해와 친하게 지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용기와 무용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군사대국 도르키메니아의 수송선이 바람계곡을 지나가다 추락을 하고 맙니다. 추락현장을 달려간 나우시카에게 페지테라는 나라의 공주인 라스텔이 죽어가며 짐을 태우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리고 곧 도르키메니아의 군대가 들이닥쳐 바람계곡을 점령해버립니다.

그들은 페지테를 습격하여 과거 불의 7일간에 사용했던 거신병(에반겔리온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의 고치를 꺼내오려다가 수송선이 바람계곡에 추락했고, 군대가 그것을 되찾으러 온 것입니다. 나우시카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나우시카는 인질이 되어 도르키메니아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도중에 페지테의 왕자 아스벨이 비행정들을 습격 하게 되고 나우시카와 아스벨은 부해에 추락을 합니다. 그리고 헤매던 도중, 두 사람은 “부해가 세상에 남은 오염을 정화시켜 맑은 물과 흙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독을 뿜는것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과 전쟁이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우시카의 소형 비행글라이더를 수리해 돌아가게 되고, 도르키메니아의 크샤나는 거신병을 부활시켜 권력을 찾으려 하고, 페지테는 오무를 화나게 하여 도르키메니아 군대가 있는 바람계곡을 파멸시켜 복수하려 합니다. 나우시카가 인간의 원죄와 부해의 의미를 설명해도 아무도 듣지 않고, 거신병의 공격에도 오무는 계속 전진하고, 바람계곡의 앞에 도달합니다. 나우시카는 오무의 화를 막으려 달려드는 오무의 앞에 서고, 깔려 죽고 맙니다. 하지만 오무는 그녀의 희생을 알고 멈추게 되고, 그녀를 부활시켜 줍니다. 그녀의 희생으로 인해 다시 바람계곡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1984년작, 감독/원작/시나리오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타카하타 이사오, 음악 히사이시 조.
원래 이 애니매이션은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개인적으로 연재하던 장편 만화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애니매이션화 한것입니다.

인간의 자연파괴와 자연의 역습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속되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내용과 등장인물, 몇몇 장면이 미래소년 코난과 매우 흡사하기도 합니다. 7일간의 전쟁, 나우시카의 희생과 부활등은 구세주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꾸준히 보여주는 비행에 대한 갈망도 잘 나와 있죠. 그래서 칼과 갑옷으로 싸우는 시대에도 항공기술만은 수준급인 세계입니다. 제 친한 친구는 어렸을 때 나우시카의 제트엔진 달린 글라이더가 좋아서 항공대를 지워했고, 나중에 꼭 제작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지요.

저는 이 애니매이션을 고등학교때 몇몇 인쇄물로 보았고 대학생때 나우누리의 모 애니매이션 동호회 상영회때 처음 보았습니다. 작년인가 극장에서 상영을 하기도 했죠. 84년작 답지 않게 훌륭한 액션과 꾸준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개, 인물들의 갈등을 짧은 시간에 적절히 표현하는 멋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