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니매이션 “고양이의 보은”을 기억하는가? 이상하게 “라퓨타”를 몰라도 “고양이의 보은”은 아는 분이 많더라. 이게 제대로된 극장 개봉의 힘인가 보다.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바론 남작이라는 고양이는 “귀를 기울이면”에서 나오는 인형으로, 주인공 시즈쿠가 그걸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는다. 즉, “고양이의 보은”은 “귀를 기울이면”의 스핀오프 작품이다.(조수인 뚱보 고양이도 같이 나온다)
중학 3학년생 ‘스키시마 시즈쿠’는 도서관 직원인 아버지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어머니, 독립을 준비중인 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시즈쿠는 이제 곧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어야 하지만, 너그러운 가풍덕에 독서에 열중이다. 그러던중 독서카드를 보고 자신보다 모든 책을 먼저 빌린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다. 어느날 친구들에게 줄 ‘컨트리 로드’노래 번역과 장난스러운 개사곡인 ‘콘크리트 로드’를 전해주다가 스즈쿠는 실수로 학교에 책을 놓고 오고, 어떤 남자아이에게 놀림을 받아 화가 난다.
시즈쿠는 아버지의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러 가는 길에, 전철을 타고 가는 뚱보고양이를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골동품 가게를 발견한다. 거기에서 남작이라는 멋진 고양이 인형과 공예품 장인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도시락을 잊고 가게 되는데, 이전의 그 남자아이가 약올리면서 도시락을 전해주는게 아닌가. 그가 바로 그 장인 할아버지의 손자였다.
시즈쿠는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 학우와 대화를 하다가 오히려 고백을 받아버려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다가 틈만 나면 그 남작 인형을 보러 가는데, 그러다 자신을 약올리던 남자아이와 만나 집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 소년은 그집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가 바로 시즈쿠의 주의를 끌려고 책을 전부 빌린 ‘마마사와 세이지’였다.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시즈쿠는 세이지가 열심히 자기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불안해진다.
시즈쿠는 남작 인형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기로 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물리치며 공부를 밀어놓고 집필에 열중한다. 결국 완성된 소설을 읽은 할아버지는 아직 다듬지 않은 보석의 원석에 시즈쿠를 비유하며 원석을 선물로 주고, 인형에 얽힌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다음날 새벽,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세이지는 시즈쿠를 불러내어 떠오르는 태양을 보여주며 청혼을 한다.
이 애니를 보고나서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나 자신도 어렸을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고,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을 취미로만 생각했지 재능의 발굴로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 시즈쿠와 세이지는 고등학교가면서 진로를 어느정도 결정해야 하는 일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개발하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할만한 애니랄까?
이 애니는 여름날의 비오는 풍경이나 주택가, 강가,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무척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마음에 든 애니이다. “초속 5센티미터”같은 슈퍼 울트라 세밀함은 아닐지라도 특징을 잘 잡아낸 표현이랄까? 그러고 보니 일본 애니에서 나오는 지하철이나 건물, 학교 등의 묘사는 왜 이리 우리나라랑 비슷한지 모르겠다. 같은 문화권이라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아니면 디자인을 우리나라에서 많이 참고(?)해서 건축을 하는 것일까?
이 애니매이션은 그림 스타일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으로 많이 오해받는데, 사실은 그는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고, 감독은 콘도 요시후미라는 사람이다. 그가 몇년후에 죽어서 유작이라고 한다.
이번에 늦게나마 개봉한다는 “마녀 배달부 키키”와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90년대 가장 히트한 작품들이다. “귀를 기울이면”은 당해년도 자국산영화중 일본 흥행 1위였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인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일본의 꿈과 낭만을 상징하는 지브리의 대표 흥행작들이라니, 참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