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워커

드래곤 라자의 후속작인 퓨처 워커…

드래곤 라자에서 가장 핵심인물 이었던 후치와 핸드레이크는 안 나오고(거론은 되지만), 기존의 인물들은 나오기는 하는데 할슈타일 후작을 제외하고는 거의 조연급이군요.  대신 미, 파, 쳉이라는 주인공들의 삼각관계, 신차이 선장 이야기, 철부지 아일페사스, 솔로쳐와 천공의 3기사 등 새 캐릭터들이 많이 나와서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라자에서 최고의 악인이었던 할슈타일 후작과 시오네의 심경 변화가 여운을 남겨주는 군요. 후속작인데다가 인물들이 늘어난 만큼 드래곤 라자를 보지 않고는 좀 이해하는데 무리일 듯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신스라이프가 부활하고 나서 거의 2권정도는 ‘시간’에 대한 개똥철학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프게 만드는 소설이군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라든지 인식론에 대한 철학책들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바로 미쳐버릴 수 있을 듯. ㅋㅋㅋ 게다가 엔딩이 “…멋있는 장면으로 끝. 뒤는 알아서 상상” 이라는 느낌이랄까요. 소설적으로는 나름 괜찮은 엔딩일 수 있지만 약간 배신감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성격이 논리나 이성을 따지면서 남의 감정을 잘 이해 못하는… 성향인지라, 쳉에게 꽤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ㅎㅎㅎ 미의 어이없는 말 재주와 후반부의 닭살 커플 짓도 나름 웃겼구요.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쳉과 미가 나중에 잘 만나서 부부가 이루어졌기를 바랍니다. 안 그랬으면 쳉은 그 북해의 항구도시언덕에서 망부석(望婦石?)이 될테니 -_-;

드래곤 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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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책을 사서 보진 않았고, 예전에 PC통신시절에 게시판에서 본 소설입니다. 당시 PC통신으로 ‘우와 이런게 가능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PC통신/인터넷 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워낙 유명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후치라는 시골 초장이 소년이 여행을 떠나게 되어 전설에 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본인은 유명해지는거 싫어하지만) 내용의 환타지 소설입니다. 전체적인 종족이나 세계관은 톨킨의 ‘미들어스’와 비슷하지만 마법이나 몇몇 특징은 D&D와 유사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루릴이라는 캐릭터로 표현되는 엘프 종족이 다른 환타지 소설과는 좀 다릅니다. 엘프가 정령과 친하고 마법에 능한건 다른 작품에서도 표현되지만, 드래곤 라자의 엘프는 다른 엘프들과 워낙 조화로워서 개체에 대한 차이, 즉 개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매우 논리와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루릴은 후치 일행과의 경험을 통해 인간다움을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드래곤 라자가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고찰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설정을 넣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드래곤 라자는 앞부분은 이루릴을 통해, 뒷부분은 드래곤이라는 완전무결한 존재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여줍니다.

주제는 고상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밝은 소설입니다. 소설의 화자 역할을 하는 후치가 워낙 말장난이 심하고, OPG라는 힘만 쎄지는 아이템을 얻어서 여행을 하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오크가 그를 ‘괴물 초장이’라면서 무서워하는 것도 꾸준히 웃겨주는 소재입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치밀한 면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시오네가 후치를 협박해서 넥슨을 구출’하는 장면에서 캐릭터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오네의 목적’은 상당히 뻔합니다. 왠만한 추리력을 가진 독자라면 ‘시오네가 굳이 넥슨을 구하려고 한다면, 넥슨이 드래곤 크라드메서와 뭔가 의미있는 중요한 인물이고, 크라드메서의 이전 드래곤라자가 넥슨의 삼촌(실은 친아버지)이므로, 넥슨도 라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시오네는 라자를 데리고 할짓이 별로 없으므로, 결국 넥슨이 라자가 된후 죽여서 크라드메서를 다시 발광시키려는 것’이라는 정도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모든 면을 치밀하게 추리하고 지휘를 하던 카일이 ‘후치’라는 화자 캐릭터가 똑똑해짐으로서 상대적으로 출연비중이 낮아지고, 주제가 어려워지고 대사가 많아지면서 소설가가 꼼꼼히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국내 환타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많이 웃으며 읽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