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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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는 보기엔 재미있게 볼수 있는데, 감상을 쓰기에 참 어려운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무수한 상상과 비유, 인용, 과장이 섞여 있다. 셰익스피어, 윌리엄 블레이크, 무정부주의와 전체주의, 폭압정치와 테러리즘, 현대의 영웅의 의미와 잔다르크, 집단 수용소, 생체실험, 집단 공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회의, 동성애, 민족주의, 공포에 의한 국민 제어와 매스미디어의 관계, 고전 음악, 고전 영화, 각종 문화적 아이콘들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이용해서 단순할수 있는 ‘부당한 정권에 대한 테러리스트’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쉬우나, 사실 그렇게 다 섞고나서도 복잡하지 않고 진국으로 느껴지는게 바로 기술인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한때는 자매가 되었냐고 보도되고 난리였지만)는 그런면에서 매트릭스 시리즈 이후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줘 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화려한 데이터 속에 가려진 헛점이 매우 많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의사당폭파를 보러 나오는 민중들은, 사실 그동안 공포에 질려서 꼼짝 못하던 그 민중이라고 볼 때, 갑자기 용기를 드러낸 동기가 불명확하다. 가면 때문일까? 아니면 브이가 보여준 방송국 테러때문에? 혹은 핑거맨이 아이를 죽여서? 브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복수를 하러 다녔지만, 그게 민중에게 동기를 심어주었기엔 약하다. 무언가 하기는 했을텐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고, 후반부에는 갑자기 나탈리 포트먼 능욕(?)으로 감정적으로 빠지다가 최종에는 총알 다 받아주기 액션을 펼친다음 전형적인 영웅 연애물 (영웅은 그녀 품에서 최후를) 로 마무리 지어진다. 독재정권에게 억눌린 민중의 봉기가 쉽지 않다는것과 단순히 군대 앞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는 광주 민주화 투쟁을 겪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핀치 형사의 말대로 “총앞에 나서면 뻔하지”이다. 그걸 스스로 말하고나서 다르게 비켜가는 비현실적인 영화이다. 민중봉기의 어려움을 촛불시위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다고나 할까?

배역들은 정말 멋지다. 휴고 위빙은 얼굴도 나오지 못하는데도 목소리와 가면만으로 상당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브이의 알듯말듯한 개성은 다 그의 노력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일부러 그렇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본 그녀의 영화중 가장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아름답게 나오다가 머리를 잘려서 너무 안타깝다. 그 나이에 몸을 안아끼는 연기를 하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다. 제대로 형사 연기를 해준 스테판 리 아저씨는 이상하게 내가 안보는 영화에만 나오다가 오랫만에 보여서 반가웠고, 방송국 PD 인 스테판 프라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나레이터도 했었네..)

ps.
이 영화는 영국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고, 영국 만화를 원작에다가 배경도 영국이고, 배우들도 영국인이거나 영국식 영어를 쓰고 있다. 최근 해리포터 시리즈를 비롯해서 미국과 영국이 합작을 하거나 미국영화이면서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지고 있는데, 과연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영국 느낌이라는건 미국 사람들이나 영연방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드라마를 보듯이 아련한 추억같은 느낌이라도 있는것일까?

IMDB http://www.imdb.com/title/tt0434409/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V_for_Vendetta (원작)
http://en.wikipedia.org/wiki/V_for_Vendetta_%28film%29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