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때문에 보수라 못한다?

내가 지나치게 개혁적인 주장을 펴서 주변사람과 마찰을 일으키는것과는 반대로, 우리 아버지는 보수적인 분이다.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기계는 시대에 맞지 않아 못쓰게 되었다 하더라도 새 기계를 살수는 없다. 아직 돌아가지도 않고 돌릴 테잎도 없는 VTR을 TV와 연결하고 계시며 DVD플레이어는 생각도 안하신다. TV는 아직 공중파 3사만 나오고, 집은 내 나이와 같은 구식이며, TV에 나오는 노조 관련된 뉴스만 보면 무조건 노조들 때문에 경제가 안좋다고 주장하시고 가부장적인 분이시다. 그리고 민노당이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게 생각하시고,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들 중 많은것을 못마땅해하신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는 노무현을 찍으셨고, 한나라당에 대해 아주 열성적으로 비난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으신다.

이유를 여쭈어보면 대답은 항상 같다.
“한나라당 하는 짓이 엉터리잖아. 대통령이 한다는 일이 있으면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할수 있는건데 무조건 반대잖아.”

결국 한나라당이 미워서 스스로 보수적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 못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중에 군대 학사장교인지 무슨 장교인지를 거쳤고, 그의 아버지도 군인출신에 집안이 부유하고 보수적이라 사고 방식도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형은 남들이 “당신 좀 보수적이시네요” 하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형은 향군회인지 뭔지 군대 인맥을 통해 경험한 바에 의하면 ‘보수 = 자기이익을 위해 남들이 가진 시간이라도 멈추길 바라는 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자기는 그보다는 ‘유연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엄청 보수적인데..자기는 중도란다.

그 선배도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미워서 보수임에도 보수라고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라고 하면 이미지가 굳어져 버려서일까? 어째서 우리는 자기보다 한발짝 좌측에 있는 사람은 좌익이고, 좌익은 빨갱이고, 빨갱이는 친북이고…..-_-;

당이나 단체들이 여러 가치관을 대변하지 못할까? 자칭 보수정당은 왜 경상도 당이며, 자칭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단체는 남들이 자신들과 다른 대북정책을 주장할 자유는 인정하지 않을까?

“나는 적당히 보수”라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그걸 “난 저쪽도 아니고 이쪽은 싫어”라는 의미로 사용할까?

알쏭달쏭한 일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거야”

글쓴이 : Draco (https://drac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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