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Inception)을 봤습니다.

!!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감독이 ‘나 사실은 이걸 오랫동안 구상했는데 이제야 만들었어’가 유행인가 봅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도 그랬고, 봉준호감독의 ‘마더’,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도 그랬다죠. (사실 카메론 감독은 어비스때도 그랬고 터미네이터때도 그런 소리해서…ㅋㅋ)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셉션’을 오랫동안 구상했다네요.

영화 소재 자체는 많이 익숙한 소재입니다. 특히 동양사람이라면 장자의 호접몽이라면 뭐 척척 몇마디 말 할정도는 다 알고 있죠. 거기에다 미션 임파서블, 매트릭스, 기타 많은 영화가 연상되는, 어찌보면 그리 참신한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주인공 코브의 내면과 그 갈등을 소재에 어울리게 잘 풀어내고, 그 극복 과정이나 표현 방법이 참 능수 능란 하더군요. 게다가 킥이라던지 꿈속의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어려운 개념을 영화 흐름에 거슬리지 않게 잘 설명하는 것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제임스 카메론이 하던 방식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영화는 훌륭했고, 재미있었습니다. 올 여름 휴가철에 가장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영화 내용이 어려울까봐 보기전에 걱정하는 분들이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여친은 어려워하더군요. 음… 이해에 대한 난이도는 매트릭스정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만, 4, 5군데의 진행이 동시에 일어나서 매트릭스보다는 좀 산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볼때보다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결말이나 진실에 대한 해석이 수십가지로 다양하게 가능해서 그 점에서 혼동이 심할듯 하네요 -_-; 확실한 결말을 원하는 분들에겐 비추.

네오처럼 초현실적인 초능력을 부리거나 액션을 기대하시면 실망할 듯. 그런건 영화 홍보영상에 나오는 장면이 거의 전부입니다. 영화의 중심 줄기는 주인공 코브의 내면 문제와 동시에 여러 꿈에서 이루어지는 작전에 중심을 두고 있지, 멋진 영상이나 액션은 그리 중심이 아닌듯 했습니다.

한가지 실망한 것은 초반에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아리아드네라든지, 시시껄렁한 임스라던지, 약에 대해서는 뭔가 긱스러운 유서프라던지…꽤 한가닥 해줄 것 같았던 캐릭터들이 나중에는 생각보다 작전상의 유용한 동료 그 이상이 없이 영화가 진행이 된다는게 아쉽습니다. 아리아드네야 뭐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초반에 보여주던 시각적인 능력 때문에 너무 큰 기대를 하게 했거든요. 어째튼 그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가 돌아가는 장면…. 제기랄… 관객들이 죄다 웃거나 궁시렁 거리더군요. 애들의 모습이 너무 그대로라거나 갑자기 마일스 교수가 나타난 것들 때문에 충분히 꿈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답을 안주니 속터지네요 ㅎㅎㅎ 오픈된 결말을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겠지만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화는 캐치 미 이프 유캔 이후로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이 참 실감나네요 -_-; 하긴 플래툰, 매이저 리그 이후로 처음 본 톰 배린저도 참… 반대로 엘런 페이지는 나이로 치면 대학생으로 나오는게 맞긴 맞는데, 아무리 봐도 고딩정도로 보이니 원…

어째튼 머리쓰는 미스테리가 섞인 스케일 큰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강추일 영화입니다.

ps.
한가지 생각.

매트릭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 영화에서 꿈을 온라인 게임에 대입해보면 재미있을 듯 합니다.

유서프의 가게에서 현실을 잊고 꿈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피씨방에서 온라인 게임에 빠진 사람들. 꿈에 중독되어 못 나오는 멜은 중증 중독자. 게임에서 정보를 훔치는 사람들은 해커.

그럼 킥은 뭘까요? 콘센트 뽑기? 부모님의 잔소리? 현실의 급한 볼일? ㅋㅋㅋ

ps.

이 영화 최고의 대사.
팀원들이 항공기 직원들을 매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데 사이토 왈 “내가 그 항공사 인수했어.” ㅋㅋㅋㅋ 가진자의 방법. 사이버 포뮬러에서 란돌이 하던 짓을 영화에서 볼 줄이야.

난 귀신에게 스포일링을 당했다

몇년 전, 일본 영화 “링”이 유행한적이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문명의 이기인 TV와 비디오 테잎을 매개로 귀신이 튀어나오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었고, 귀신영화를 다시 부흥케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다코가 TV를 통해 나올때 무섭다며 화제로 삼곤 했다.

그러나, 나는 링을 볼때, 사다코가 TV를 통해 나오는 장면에서, 마치 이미 결말을 다 알아버린것처럼 김이 새버렸다. 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귀신의 각기춤스러운 움직임이 웃겨서 큭큭 거리며 웃고야 말았다. 영화가 유치하다는듯이 웃음을 참는 내가 같이 영화를 보던 사람들에겐 미웠으리라.

그 이유는 정말 이미 한번 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더 무서운 버전으로.

때는 1983년, 우리 집은 방과 거실에 난방 공사를 다시 하고 있었다. 식구들은 어쩔수 없이 세를 주던 작은방에서 모여서 자야했다.

그래서 잠자리가 불편했나 보다. 어린 나는 꿈을 꾸었다. 아니, 눈을 뜨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자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움직이지 못한채 앞을 보고 있었다.

악몽1

앞에는 문이 하나 있는 벽이 있었다. 왜…그 옛날 집에 흔히 있는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서 니스 바른 갈색 문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빈벽에 또 하나의 문이 있는 것이었다!

악몽2

문은 청록색이고, 옆으로 길고, 위로 밀어 올리는 문이었다. (저건 문도 아니고 창문도 아니여) 난 그 문 건너편에 뭔가 있는 느낌이 들었고, 문을 잠그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차피 문고리도 없는 문이었다.

악몽3

갑자기 문이 위로 열리고, 건너편(사실 건너편에는 작은 부엌이 있어야 했는데)의 어둠이 보였다. 그리고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악몽4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트려 바닥까지 끌리는 여자가, 문을 더 들어올리며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문이 가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옆으로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방바닥을 디딘 발은 하얗고 핏기가 없었다. 넘어온 귀신은 영화속의 귀신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흰옷에 긴머리…그리고 나에게 천천히 작은 걸음으로 다가왔다.(좀비같은 뚜벅거림이 아니라 부드러운 발걸음)

난 공포에 질려, 점점 놀라다가 벌떡 일어나며 꿈을 깼다. 가위눌리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사다코

생각해보면, TV가 아니라 가로로된 이상한 문이라는 것 빼면 링하고 똑같은 장면이다. 난 귀신에게 20년후의 영화를 스포일링 당했다. 덕분에 영화 하나 보는 재미를 완전히 잃었다. 물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