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감정이라는 잘못된 양념이 아쉬운 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고의 맛은 오직 하나'라는 포스터 카피 자체가 만화판 식객과의 괴리를 예고한다.

영화 식객을 보았다. 타짜와 같이 허영만 화백이 수년간 연재하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동명 만화를 영화화 한것이다. 만화 식객은 요리 고증과 자료조사를 통한 세밀한 한국 음식의 표현, 라면이나 부대찌개등도 한국음식으로 치는 자유로운 사고, 경쟁이나 대결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승부를 무의미하게 하거나 초월해버리는 스토리와 주제, 그리고 주인공들의 재치있는 코믹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영화 식객의 경우는 만화 식객과 스토리가 매우 다르다. 운암정에서 경쟁에 밀려난 성찬과 기자 진수, 그리고 오봉주라는 요소는 그대로 가져갔으나, 숙수의 칼을 상품으로 걸고 벌이는 대회가 가장 핵심 줄기이다. “최고의 맛은 어머니 만큼이 많다”라는 주제가 소믈리에 같은 어색한 과장법을 연발하며 승부를 가르는 심사위원에 의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것은 만화에서는 승부에 집착하지만 “음식가지고 장난한 내가 졌다”라면서 부하의 실수까지도 자신의 패배로 인정하고 깨끗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쿨가이 오봉주가 영화에서는 이기기 위해 라이벌의 음식에 복어알의 독까지 넣는 더러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임원희라는 희극 배우를 오봉주로 캐스팅해놓고 어설픈 몸개그로 캐릭터를 가볍게 만든것도 참 문제다. 웃길려면 제대로 웃기던가. 만화의 핵심 코믹 캐릭터인 거지(?) 할아버지, 그리고 보광 레스토랑 식구들이 사라진것도 아쉬움이다.

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만드는것은 허영만 화백도 바라는 일이라고 하니, 그것만가지고 탓하긴 뭐하다. 하지만 더 큰 탓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황복어의 알을 가지고 짜릿한 맛을 내는 것을 사람의 생명을 놓고 칼끝에 놓는 위험한 짓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영화 자체도 감정이라는 ‘양념’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려고만 하는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이라도 낚으려는 듯한 일제시대의 비극이라는 미끼와, 일본인의 좀 오버스러운(?) 사죄와 회상, 스승의 자결, 제자의 죄의식, 선조에 대한 오봉주의 잘못된 생각과 집착, 제대로된 고수들의 대결이 아닌 조선대표 서민음식과 일본 관료가문의 전래음식(?)의 승부가 되어버린 어이없는 마지막 대결, 성찬이 기르던 소의 슬픈 희생, 사형수 이야기까지… 영화는 맛과 향기의 향연이 아닌 눈물의 향연으로 만들려고 꾸준히 시도한다. 상업영화니까 그렇게 만든거겠지만 마치 선생 김봉두의 마지막에서 억지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것같은 거북함은 어쩔수 없이 느껴진다. 그것도 마지막이 아닌 영화 내내.

‘양념’이 잘못되어 요리는 좀 어긋났지만, 이 영화의 ‘재료’는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황복회, 쇠고기 정형, 고기 굽기, 숯이야기, 사형수와 고구마등의 이야기가 원작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준다. 배고픈 채로 보면 미칠거 같은 화려하고 맛깔나는 음식들, 청각을 자극하는 도마질소리와 탕이 끓는 소리, 원작과 느낌이 무척 닮은 배우들도 큰 점수를 받을 부분들이다. 마지막에 허영만 화백의 카메오 등장도 놓치면 안된다.

타짜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타짜”를 저번 일요일에 봤다. 개인적으로 허영만 화백을 국내 만화가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다소 구식이지만 정감있고 깔끔하며, 지나치게 스토리의 스케일을 키우지 않으면서 세밀한 표현에 힘쓰고, 클라이막스는 짜릿하며, 인물들은 개성있고 심리묘사가 잘되고, 설정에 있어 과장되지 않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 있다. 영화화되기 매우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는 원작과 거의 같다. 고니라는 초짜가 누나의 돈을 싸들고 노름에 갔다가 망하고, 그대로 가출한다. 평경장이라는 타짜를 만나 기술을 배웠지만, 이미 뒷세계의 배신과 피의 세계에 들여놓은 상태에서 평경장을 잃는다. 주인이자 사랑하는 사이가 된 정마담과 동료 고광렬의 힘으로 돈을 벌게 되고 나중에 아귀라는 사악한 타짜와 한판을 벌인다.

원작 타짜는 3부작(현재 3부째 연재중)인데, 영화는 1부를 영화화 했다. 고니라는 타짜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는원작에서 통금이 빈번하던 70년대말쯤으로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10년정도 당겨서 삐삐가 유행하던 90년대초로 설정한거 같다. 또 원작과 다른 점은 원작에서 마지막에 고니는 누나의 돈을 갚고 손을 씻는데, 영화에서는 비교적 일찍 누나에 대한 빚의 미련을 떨쳐내며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여가를 즐기며 끝내는 것으로 화려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좀더 비교육적으로 바뀐 건가? ^^; 결판이 나는 배안의 도박장도 원작 만화에서는 고니가 한창 고광렬과 다투다 화해했다 하며 콤비 실력을 발휘할때 쯤 나오는 배경이다. 아귀와의 결판도 원작 만화에서는 고광렬이 아귀에게 죽고 분노한 고니에 의해 시작되지만 영화는 다르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인 아귀와의 결판 방식이나 인물설정 등은 거의 같다.

고니역의 조승우, 평경장역의 백윤식, 정마담역의 김혜수, 고광렬역의 유해진. 모두 훌륭한 연기로 캐릭터들을 묘사해 나간다. 백윤식씨는 싸움의 법칙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캐릭터를 새로 창조해버리는 듯한 힘과 웃음이 있다.^^; 아수라 발발타…ㅋㅋ 김혜수씨는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어휴….슴가가 너무 섹시하시다. @_@ (그거 밖에 뇌리에 남아 있지를 않게 만듬;;)

이제 거의 극장에서는 막을 내릴 시기이다. 흥행에는 꽤 성공했다고 들었으니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혹시 안보신 분은 꼭 보시도록 권하고 싶다.

덧. 허영만 화백이 까메오로 등장하는데….영화 볼때는 워낙 포스가 강한 주인공들에 집중 하느라 못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