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 몇달 쉬는 동안 수술을 받았다.
그때가 91년 12월 겨울, 크리스마스때였다.
강남성모병원 6인 병실을 쓰던 내 앞에, 얼굴이 시커먼 어떤 형이 누워 있었다. 듣기로는 고대 법학과를 휴학중인 대학생이며, 군대에 가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심한 간경화 상태라고 했다.
그 형은 기력이 거의 없었음에도 책을 놓치 못하는 열성 공부벌레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린 나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확실했다. 수술받고 2일만에 걸어다니던 나와는 반대로 그 형의 병은 깊어져만 갔다.
얼마후 그 형은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이른 봄에, 신문에 기사가 났다. 유능한 인재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이름과 상황을 봐서 그 형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간경화, 그게 그리 위험한 병인줄 몰랐다. 그리고 군대가 병사들 죽을병 걸려도 나몰라라 하는 곳인 줄 몰랐다.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하던 사람의 죽음을 처음 느껴본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현된 사고.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고인의 영혼이 부디 좋은 곳에 가셨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