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논리만으로는 공포를 없애지 못한다.

요즘 여자친구는 닭을 무서워한다. 주요 데이트 장소였던 KFC도 무섭고, 닭고기 비슷한것을 파는 가게도 무섭고, 새장이 있는 동물원도 무섭다. 덕분에 데이트를 할 장소나 식사를 해결할 방법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집에 달걀을 사오시는 것도 꺼리시고, 달걀로 된 음식도 잘 안드시고, 가끔 사드시던 치킨도 안드신다. 얼마전에는 나름 앞서나가는 분들인 IT관련 모임에서도 ‘닭은 조류독감 지나가고나서 먹자’라고 이야기가 되더라.

이 상황은 나와는 무척 다르다. 나는 나름대로 얻은 정보를 통해 “익힌 음식물 섭취나 동물원 관람으로는 조류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별로 공포가 없다. 그리고 남들도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공포라는 것은 생물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험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피하는 개체가 살아남아 대를 이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된 것이다. 우리의 유전정보 수준에 기입된 행동이다. 그 힘은 엄청나서 신앙을 만들었고, 군중심리라는 것을 만들고, 역사를 움직여 왔다. 과학을 신 대신 신봉하기 시작한 현재도 신앙은 없어지지 않았듯이, 역시 정보나 논리만으로 공포를 없애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정보와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그 정보와 논리의 상당부분은 옳다. 하지만 그 정보와 논리를 사용하는 의도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자신들의 실수(불평등한 조약과 주권손상등)를 가려 국민들의 저항을 뿌리칠려는데 집중되어 있다. 정보와 논리라는 것은 도구일뿐, 의도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악용될 수가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보와 논리뿐 아니라 어설픈 무마라던지, 몽둥이를 들어 다른 공포를 주려는 제스쳐까지 비치고 있다. 이런 방법이 국민들이 쇠고기에 대한 공포를 해소시킬 수 있을까? 정부의 또다른 기대는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공포를 제대로 해소시켜 주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불신으로 바뀔것이다. 국민의 불신만큼 정권에 골치아픈 현상이 어디있을까.  

원래 한나라당은 국민의 공포를 이용하는 스킬이 최강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엔 북한에 대한 공포를 이용했고, 최근에는 경제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집권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공포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다. 이것도 나름 아이러니중 하나라 하겠다.

광우병보다 위험한 주권 포기

2MB께서 미국산 소고기도 뼈나 척수 상관않고 30개월 이내면 수입하기로 하셨다. 미국에서 육식성 사료를 사용 안하도록 법을 바꾸면 법의 실행여부와 상관없이 바로 30개월 제한도 푼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미국 소고기를 수입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뇌가 숭숭 뚤리거나 하는 위험상황으로 가지는 않을것이다. 광우병은 걸리면 죽지만 걸릴 확률은 거의 로또이다. 아마 피해자 수백명선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대책마련이 시작될것이다. 그 수백명이 누가 될지가 바로 공포이고, 그 공포를 또 정부가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 문제겠지만. 나는 광우병보다 훨씬 위험한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주권포기이다. 2MB께서는 이미 협상 다 해버린 FTA협정을 의회에서 ‘비준’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국민의 건강을 담보하고 있고, WTO 규칙에도 명시되어 있는 검역주권을 헌납하셨다. 한번 자존심 접고 일을 부탁했는데, 다음 부탁에는 자존심을 세우고 부탁할 수 있을까? 한번 10만원 내고 누군가에게 청탁을 했다면, 그 다음에 그 사람에게 5만원 내고 청탁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게 과연 실용적일까? 주권을 야금야금 잃어도 돈벌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면, 과연 일제시대에는 행복했을까?

광우병이나 검역이나 외교주권 포기보다 더더더더 위험한것은 우리 국민들의 주권포기이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2MB 정권을 탄생시켰다. 국민들은 2MB가 노무현과 확연히 다르고, 박정희를 연상시키고, 기업 CEO라는 점때문에 노무현보다는 잘할거라라고 생각했다. 국민들은 2MB가 필연적으로 영어따지고, 국민들 경쟁시키고, 물가폭등 일으키고, 부동산 들썩이게 하고, 미국에 넙죽거리고, 일본과는 무조건 OK하고, 기타등등 할거라는걸 알면서…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쥐를 개보다 잘 쫓아줄거라고 믿으면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넘겼다. 고민없이 무책임하게 잘못된 지도자를 뽑는 주권행사는 주권포기나 마찮가지다. 광고에서 2MB를 응원했던 소기르던 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광우병은 미래에 닥쳐올 위험이다. 하지만 주권포기는 미래에 닥쳐올 ‘모든 위험’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