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영화다운 영화 “바르게 살자”

“바르게 살자”를 뒤늦게 봤습니다. 오랫만에 웃으면서, 그러면서 적절히 엉덩이에 무게 유지하며 본 한국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영화같은’영화입니다. 우선 비현실적인 요소가 널려있죠. 원리원칙대로 사는 주인공이라는 점이 우리나라에서는 비현실적이고, 그게 무려 경찰공무원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덕분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 괴리를 유머로 승화시킨 영화입니다. 게다가 그런 주인공이 ‘능력’도 있어가지고, 상사의 “진짜처럼 해라”라는 훈련명령을 곧이 곧대로 완벽하게 해버린다는 건 정말 실없는 웃음이 나오게 만들 지경입니다. 더욱이 주인공 이름이 ‘정도만’이에요. 정도만 간다 이거죠.

이런 설정은 웃음뿐 아니라 뭐든 ‘적당히’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허를 찌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걸 웃음으로 풀어간 것이 영화만이 할수 있는 매력이죠. 우리가 그동안 웃길려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는 많지만, 대부분 마지막에 마지못해 억지 눈물이 나올 장면 한두개 끼워넣은 그런 영화만 만들어왔지요. 이 영화는 오히려 설정 자체가 진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는 방법이 웃긴 그런 영화입니다. 어떤면에선 오랫만에 재대로 나온 영화입니다.

영화는 중간에 좀 지루해지기도 하고, 오락적인 요소가 좀 줄어들기도 합니다. 은행강도를 소재로 했다면 뭔가 화끈한 진압전이나 협상이 긴박하게 이루어질만도 한데, “네고시에이터”수준의 긴박감까지는 발치에도 가지 못합니다. 영화가 현실과 비현실의 틈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웃음을 주는 건 좋은데, 우산들고 춤을 추는 장면등의 너무 비현실로 깊이 갔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도 있습니다. 저건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장면이죠. 해결못한 사건이 우연히 발견된 채권으로 잘 처리되어버리는 해피엔딩도 좀 껄끄럽습니다. 하지만 뭐 즐겁게 본 영화이니 봐주기로 했습니다.

주인공 정도만의 캐릭터는 정재영씨에게 무척 어울립니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주인공의 고집있는 순진함이라는 느낌이 풍기거든요. 상사 역의 손병호씨도 차거울거 같은 마스크에서 역으로 당한다는 느낌이 워낙 재미있습니다. 다른 조연들도 참 척척 달라붙고, 특히 은행원역의 이영은씨도 주인공과 어울리고 귀여웠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한국영화를 무척 편식해 보는 제가 오랫만에 큰 점수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 戰記, 2006)

원래 환타지나 SF영화를 볼때는 몇몇 부분이 이해가 안되도 ‘그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는게? 예의이긴 합니다. 반지의 제왕같이 영화화를 나름 잘했다는 평을 듣는 작품도 영화의 상영시간안에 몇권짜리 책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 애니, 게드전기의 경우는 그게 도를 넘었습니다. 아렌은 왜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지, 그림자는 무엇인지, 왜 세상이 막장 분위기인지, 게드는 어떤 인물이며 마법사는 무엇인지, 테나는 게드랑 무슨 관계인지, 테루는 왜 저리 삐쳤는지, 거미는 왜 아렌을 가지고 노는지, 계속 등장하는 벼랑에서 보는 노을은 무엇인지, 왜 용이 인간으로 변신하고 있었던건지, 세상 망하거나 마법이 사라진건 해결 안하고 뭐하는건지, 무엇하나 설명이 되는게 없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은 고작 느긋하게 농사지으며 게드가 설명해주는 마법의 원리(진짜 이름을 사용해 명령을 내리는)와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죠. 설명이 부실한걸 원작을 보고 알수 있으면 다행이긴 한데, 들은바로는 원작과도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뭔가 이야기의 실마리나 구심점이 되야할 악당 거미도 뭐 그저그런 욕심만 앞서는 악당일 뿐이고, 부하들은 흔하디흔한 소인배입니다. 숙적을 처형하는데 날짜 정해서 미루다가 주인공에게 당한다라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 전개와 그저 도망만 치다 죽는 운명을 가졌죠. 그리고 악당 죽였다고 모든게 해결되어 버리고, 두 남녀 주인공들이 좋아하게 되는것도 유치합니다. 심각한 분위기로 치면 거의 원령공주급인데, 캐릭터나 이야기 진행이 전부 유치하거나 어설프니 되는게 없습니다. 분위기에 밸런스를 맞춰줄 코믹한 장면도 수다쟁이 아줌마들이나 게드가 얼굴 변신시키는 부분 뿐이라 아쉬웠습니다.

이 애니는 참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팬들에게는 고로 감독이 역시 아버지만큼은 못된다는 평을, 원작인 어슐러 르귄의 소설 팬들에게는 원작과 너무 다르다거나, 주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일본 애니매이션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몇몇 OVA나 극장판들을 제외하고는 너무 상업적이기만한 작품들이 많고, 그나마 작품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춘것이 지부리의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지브리가 감독들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났죠.

이 작품의 좋은 점을 꼽으라면, 역시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수 있는 멋진 풍경(그림의 디테일은 최근 작품보다 못하지만), 깔끔한 캐릭터 디자인, 은근히 흡인력 있는 음악 정도입니다. 특히 하이타카의 테마곡이나 하이타카가 아렌과 만난 다음날 길을 갈때 나오는 음악은 제가 잠시 중독을 일으킬 정도로 좋았습니다.

캐릭터 디자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거미의 직속 부하 디자인은 아무래도 나우시카의 ‘크샤나’공주의 부하와 너무 똑같군요. 하는 짓은 더 얍삽하지만 말입니다. 마약장수 할아버지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서 나왔던 중과 같은 디자인이고 말입니다.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만나러 와도 되냐면서 묻고 헤어지는 장면도 원령공주의 엔딩과 너무 같습니다.

어째튼 지브리 스튜디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서 안정된 작품을 만들길 바라면서 아쉬움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작품인 “절벽 위의 포뇨”도 기대됩니다.

ps. 우리나라 더빙으로 볼때는 ‘게드’였는데, 일본어 더빙에서는 ‘하이타카’군요. 간달프처럼 이름이 여러개인걸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왜 일본과 다른 이름으로 더빙했을까요. 이래저래 궁금한게 많아서 조금이라도 이해할려면 기회가 되는데로 원작 소설을 사 봐야겠습니다.

ps. 이름의 경우는 찾아봤더니 ‘게드’는 진정한 이름이고(신뢰하는 사람 외에 알려줘선 안됨), 평상시 사용하는 이름이 Sparrowhawk인데, 이것을 우리 말로는 “새매”라고 번역하고, 일본어로는 “하이타카”라고 번역한다고 합니다. 그럼 애니의 한국어 더빙판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게드라고 부르던데, 가까운 사람외에는 알면 안되는 이름이니 잘못된 것이군요.

라마와의 랑데부 (Rendezvous with Rama)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클라크 지음 / 박상준 옮김 / 고려원미디어 / 1994년 5월 20일 초판 / 5,500원

세계 SF 3대 거장중 마지막 생존자(?)이셨던 아서 C 클라크 경이 3월 19일 돌아가셨습니다. ‘경’이라고 하니, 그의 소설에서 “최근엔 영국 사람들 중 기사작위 하나 안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라고 비꼰게 연상되는군요.  하지만 그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였습니다. 과학적이고 선견지명적인 아이디어를 소설에 담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수많은 글이 실제로 과학발전이나 다른 문학, 영화 발전에 영향을 주었죠. 그리고 그는 칼 세이건 교수님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도 호각을 다툴정도의 “외계인 매니아”였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의 소설에는 유독 외계인이 지구인을 시험하거나 올바른 길로 이끌려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지구와 접촉할 정도로 지적으로 발전한 존재가 지구인을 해할정도로 어리석거나 폭력적일리가 없다는게 그의 한결같은 주장이었죠. 그의 대표작인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도 그런 주제를 가지고 있었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마와의 랑데부”도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2130년 여름, 화성의 파수대 레이더에서 목성 궤도 바깥쪽에서 접근하는 소행성을 발견한다. 이 소행성은 31/439로 이름지어졌다. 이 소행성은 약 50킬로미터의 크기로, 시속 10만킬로미터의 속도로 태양계 안쪽을 향해 타원형으로 나아가 다시 태양계 바깥으로 빠져나갈 궤도인것으로 밝혀졌다. 소행성은 라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미래엔 그리스와 로마신화 이름은 다 썼다고 한다…;; 센스짱.), 추가적인 관측으로 자연적인 천체로는 불가능한 4분도 안되는 빠른 자전속도를 가진것을 알게 되자 천문학자들은 일제히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탐사위성을 통해 거대한 외계의 물체임이 밝혀진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라마를 탐사하기에 적합한 우주선은 ‘엔데버’호밖에 없다는것이 판단되자, 모든 연료와 자원은 엔데버호에 지원되고, 엔데버호 선장 노턴의 지휘아래 급히 라마를 추격하게 된다. 노턴 선장은 현명했고, 부하들은 선장을 신뢰했으며 능력있고 창의적이고 용감했다.(어이쿠 이상저인 파티…) 그들은 라마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고, 거대하고 어두운 내부를 탐험한다. 내부는 공기가 가득했고, 자전으로 인한 인공중력이 있고,  원통형 벽은 땅과 얼어붙은 바다가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가기 위해 원통의 뚜껑부분에 사다리와 계단이 있었고, 반대편 뚜껑부분에는 뿔모양의 물체들이 있었다.

라마가 태양에 가까워지자, 바다가 녹고 내부에 태양과 같은 조명이 들어온다. 그 후 라마에는 내부를 수리하거나 관리하는 로봇들이 만들어져 돌아다니고,  지구인들은 그것이 놀라워 하며 배를 만들거나 자전거 비행기로 탐험을 계속한다. 그러나 라마의 외계인은 찾을수가 없었고, 뉴욕이라 이름 지은곳에 복잡한 건물들에서 일부 유물들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라마가 태양에 아주 가까워지자, 겁을 먹은 헤르미안(지구에서 금성으로 이민해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핵무기를 라마로 쏘지만, 엔데버호 선원들의 기지로 핵미사일은 무력화 된다.

라마는 태양에 아주 가까워지자, 로봇들이 자취를 감추고 조명도 꺼지며 떠날 준비를 한다. 엔데버호 선원들이 떠나자 라마는 역장과 비슷한것을 발생시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빨아들인다음 가속을 하여 태양계를 벗어난다. 멀리 떨어진 탐사 위원회에서 정보를 듣던 칼리슬 페레라 박사는 “라마인들의 세계는 모든것이 3의 철학이다”라는 소리를 중얼거린다. (라마 내부의 에어록, 사다리, 계단, 조명, 로봇등 모든 구조는 3이나 3의 배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말은 라마라는 우주선이 2대가 더 온다는 암시도 된다.)

James Ciomperlik's Rama
James Ciomperlik 이라는 3D 아티스트가 그린 라마의 내부 상상도

광할한 우주를 건너온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지는 놀랄만한 스케일의 모습들, 외계의 철학이 담긴 앞선 기술,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탐험해 나가는 탐사대원들이 보여주는 재미.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결말과 여운. 그것이 바로 ‘라마와의 랑데부’의 재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72년에 씌어졌는데, SF문학상의 큰 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쥬피터상을 다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후속인 Rama II(1989) 와 The Garden of Rama (1991), Rama Revealed (1993)이 더 있습니다.  내용은 첫편에서 암시한것 처럼 70년후에 또하나의 라마가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탐사대가 파견되는데 이러저러한 인간들의 욕심과 국가들의 충돌로 몇명이 라마에 남은채로 태양계를 떠나게 되고, 고생끝에 생존해서 우주인들의 부녀회같은 모임에  가게 된다는것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후부터는 다소 마음에 안들어서 읽다가 말았습니다. 소설 내에 인간의 악하고 처절한 모습이나 섹스에 대한 내용이 자주 표현되고, 특히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에서 꺼려지는 ‘지구인을 시험하고 내려다보는 신적 존재로서의 외계인’이 자주 묘사되었거든요. 개인적으로 1편으로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게 라마로서는 가장 좋은 마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라마는 곧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발전된 특수효과와 멋진 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질테니 무척 기대됩니다. 아서 C 클라크 경이 영화화 되는걸 못보고 돌아가시다니, 무척 안타깝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아서 C 클라크 – http://ko.wikipedia.org/wiki/아서_C._클라크
라마와의 랑데부 – http://en.wikipedia.org/wiki/Rendezvous_with_Rama

해킹이나 고스트는 공안9과에게나 줘버리라구. 애플시드 엑스마키나를 보고.

애플시드 엑스마키나
원제 – Appleseed Saga: Ex Machina

애플시드는 일본 SF만화 팬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의 원작자로 유명한 시로 마사무네라는 만화가가  그보다 먼저 그린 작품이죠. 공각기동대와 비슷하게 특수부대에서 전투력 짱인 여주인공과 그의 보호자격인 사이보그 브리아레오스 H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도시나 세계3차대전 이후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이 다른것은, 공각기동대는 고도로 발달한 네트워크에 의한 범죄를 해결하면서 인간의 자아나 사회현상 같은 개념을 다루고, 애플시드는 고도로 발달한 사이보그나 로봇에 의한 범죄를 무력으로 해결하며 인류의 진화와 기계와 인공지능, 국가간 대립등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각기동대는 개인과 개인을 다루고 소프트웨어적이며, 애플시드는 규모적이고 하드웨어적입니다. 그리고 액션은 공각기동대식 돌격보다는 SWAT 교본을 보는 듯한 팀플래이와 엄폐/엄호를 기준으로 합니다.무조건 돌격하기 보단 몸을 드러내지 않고 관찰하기 위해 주인공의 랜드메이트나 사이보그들이 카메라를 길게 뽑아서 쓰는것이나 랜드메이트의 조작방법 등, 미래적 설정을 넣더라도 하나하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죠. 물론 두 주인공의 닿을듯 말듯한 사랑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피소드의 양념 수준에서 마무리 됩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사랑이라는 애절함을 감질맛으로 처리해버리는 작가의 고단수 전략이 숨어 있죠.

여기까진 원작 이야기입니다. 이제 엑스마키나를 이야기 해보죠. 애플시드 엑스마키나의 기본 줄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개인간의 개성을 없애기 위해 국가 안보용의 위성 네트워크와 개인 정보 단말기를 이용해 모든 인간의 의식을 네트워크로 하나로 만들려고 하지만, 사실은 이게 마인드 컨트롤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고, 주인공들이 나서서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인의 의식을 해킹하고, 국가 기간망을 해킹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 내용입니다. 이게 애플시드입니까, 공각기동대입니까? 게다가 관객은 베일에 쌓여 있는 인물인 브리아레오스의 꽃미남 마스크도 알수 있고, 그 꽃미남이 “세상이 망하더라도 너는 지켜줄께”라는 초닭살 멘트를 날리는걸 들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브리의 클론이 나와서 페이스오프 흉내도 냅니다.(역시 오우삼..) 엄폐나 엄호는 커녕 애인의 난사를 비집고 공중제비하며 총을 쏘는 듀난이라는 뻘짓도 봐야 하고, 몸 날리기나 비둘기, 탄피 흩뿌리기라는 홍콩영화식 미장센은 덤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다 꽃미남 꽃미녀이고, 험악한 인상의 아르게스가 (원작에는 FBI였는데, 여기서는 포세이돈 똘마니) 밸런스를 맞춰준다고 해도 너무 느끼합니다. 그외에 살짝 세계관도 바꿔놨는데, 설명하기 귀찮으니 넘어가죠. 하여튼 너무 버터칠 해놨습니다. 이게 애플시드를 영화화 한건지, 애플시드에서 차용해서 그냥 꽃치장 영화를 만들어 놨는지 의문입니다.

주제나 전개과정, 연출도 너무 도식적이고 뻔합니다. 범인이 동기가 별로 없습니다. 좋아하던 여자 박사가 자살해서 부활시켜 놓고 세상에 복수한다는 거였을까요? 이상론을 펼치지만 어차피 개인을 네트워크로 이어버린다고 평화롭게 하나가 되진 않습니다. 그건 매트릭스 영화에서 아키텍터가 네오에게 설명했죠. 거기다 그 사람들을 조종해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을 죽인다는건 어차피 병정놀이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연결되었는데, 그 장점을 살려 지능플래이를 하기는 커녕, 그냥 어기적 거리며 돌진하는 좀비에 불과하게 표현된건 안타까울 뿐입니다. 흔하디 흔하게 영화에서 보여진 사이버 테러, 그리고 그 뻔하고 뻔한걸 당하고 나서야 이해하는 주인공들과 조직들, 그리고 해킹사건을 총들고 쳐들어가 해결하려는 모습은 마치 다이하드 4.0에 나오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영웅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인공들을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역시 총들고 맞이해주는 적들은 참 친절하죠. 거기다 브리아레오스가 해킹당하는건 좋은데, 그걸 꼭 금속으로된 머리에 핏줄이 서는 말도 안되는걸로 설명해야 합니까? 드론들 수천기가 꼭 매트릭스의 로봇들 흉내내서 빨간불켜고 줄줄이 뱀처럼 날아다녀야 합니까? 여자보스 샌드 박사는 완전 캐리건이네요. -_-; 마지막에 기지 무너지는건 유명한 라퓨타의 밑장빼기 아닙니까? 브리아레오스의 칼질이나 랜드메이트의 공중전은 너무 건담스럽습니다. 연출이란 연출이 전부다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라서 마지막까지 지루해지는데, 마지막 대사들까지도 버터칠이니…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설정도 있습니다. 오픈소스나 자유소프트 진영에서 아주 싫어할만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바로 인간들을 해킹하는데 사용되었던 개인 정보 단말기 ‘커넥서스’에 대한 설명에 “오픈소스로 디자인을 공개해서 누구나 만들수 있어 널리 퍼졌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픈소스는 내용이 공개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같은 테러 요소가 숨겨질수가 없습니다. 커넥서스는 오픈소스인데 어째서 인간을 해킹할수 있는 알고리즘을 아무도 눈치 못채고 양산했을까요? 그리고 정작 소스가 아닌 커넥서스의 파편을 가지고 모든 흑막을 밝혀낸 요시츠네는 천재?…원래 랜드메이트 전문가 아니었어?

그래픽은 멋집니다. 이제 일본 사람들은 3D의 이질감이나 리얼리티의 부족을 2D셀화의 스타일을 흉내내는 걸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듯 합니다.(이거 셀화 작업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애니업계에 안좋은 거 아닌가요?) 이전 애플시드 극장판은 일반적인 애니 같은 단순한 렌더링 이었다면, 엑스 마키나는 미색계통의 색감을 텍스쳐로 사용해서 마치 일본 미소녀 게임들에 사용하는 미려한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움직임도 더 자연스러워지고, 표정도 풍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애플시드의 묵직함을 느끼기보단 그저 보여주기 위해 뻔하고 뻔한 이야기의 블럭버스터 영화 한편 본것 같은 느낌인 것을 해소할 방법이 없네요.

ps.
이 영화는 마치 느끼 대사 베스트 30을 뽑아보란 듯이, 느끼하고 똥폼 잡는 대사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감상문에 몇개 적어보려고 했다가, 한도 없어서 그만둡니다.

ps.
엑스 마키나?라는 말은 전에 들어보셨을 겁니다. 진중권씨가 디워를 비판하면서 말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와 같은 단어거든요. 기계장치에 의한이나 기계장치로부터 라는 의미입니다. 영화에는 기계장치에 의한 인간의 통합, 그리고 사이보그나 바이오로이드같이 인간이 만들어낸것에 의지하는 인류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목의 무게감을 영화의 뻔한 연출로 망쳐 버렸습니다.

ps.
처음 교회 전투씬에서 망토를 걸치고 있던 사이보그의 모습이, 원작 만화 팬들에게 많이 익숙할거 같습니다. 바로 듀난이 프랑스 진압 임무때 착용했던 파워 슈츠 “오크”의 디자인입니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Appleseed_Ex_Machina
http://www.imdb.com/title/tt1043842/

근육질 할아버지 람보를 보고오다. – 람보4

공식적인 제목은 Rambo인데, 람보4라고도 불리고, 존 람보(John Rambo), 라스트 블러드(Last Blood)등 수많은 제목으로 불리고 있는 람보 시리즈 4번째 영화를 보고 왔다. 제발 영화만들때 임시제목 좀 자꾸 바꾸지 마라..;;


영웅은 등짝으로 말한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는 정말 화끈하다. 액션의 시원함과 화려함만으로 치면 최근 어떤 영화와도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만큼 실베스터 스텔론의 노익장은 대단하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근육과 스피드를 보여준다. 람보의 첫 권총 사격으로 순식간에 4,5명의 해적을 죽이는 것이나, 활로 기습을 하는 장면, 추적을 받을때 부비트랩을 만들고 뛰는 장면은 나이에 안어울리는 스피디함의 진수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테마음악이 흐르며 귀향 하는 장면은 시리즈의 마무리를 제대로 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마지막에 입고 온 옷은 첫편에서 본것과 칫수가 너무 다르잖아!)

하지만 이 영화는 거북한 면이 많이 있다. 일단 지나치게 잔인하다. 몸이 뚫려 죽는건 평범하고, 몸통채로 잘리거나 젤리처럼 산산히 흩어져서 살점이 여기저기 붙는…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다. 용병저격수인 일명 ‘스쿨보이’는 사람 쏠려고 경장갑차도 뚫는 바레트(M82A1)같은걸 들고 오고, 람보의 기관총 난사도 M60이 아닌 브라우닝 M2같은 중기관총으로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버마(미얀마)의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게임을 하는것도 잔인하지만, 그들이 뻔히 마을 아이들 납치해서 군인으로 교육시키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후에 그들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람보와 용병들에게 학살당하는 것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망가는 적의 ‘장군(별 2개 달았던데)’을 람보가 따라가서 배를 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그의 악랄함을 익히 알기에 이해가 되지만, 람보는 그가 아군을 때린거 외에는 나쁜짓 하는 걸 보지 못했다. 굳이 도망가는걸 따라가서 잔인하게 죽일 정도였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특수효과가 다른 액션 장면은 훌륭했지만, 람보의 부비트랩이 영국군 톨보이 폭탄과 함께 터지는 장면은 뭔가 좀 어색했다. 톨보이 폭탄이 워낙 강력하긴 하지만(2차대전때 독일의 틸피츠 전함을 한발로 격침시켜 버린 유명한 5톤이 넘는 폭탄…) 그렇게 원폭같은 느낌이었을까..;;; 게다가 폭발의 버섯구름이나 후폭풍의 합성도 주변배경과 좀 어울리지 않았다.

설정상의 문제도 있다. 일단 트라우먼 대령이 최초로 등장하지 않는 시리즈인데,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물론 배우인 리처드 크레나가 돌아가셔서 그런거지만, 영화내에서도 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람보3에서 람보는 트라우먼에게 농담도 실실 날리고, 연인(?) 코 바오의 유품도 용감한 꼬마에게 줄정도로 상처를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가 너무 과묵하고 긴장된 모습을 보이며 등장한다. 게다가 금발 여인이 “고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지 않냐”는 말에 사건 끝나고 귀향해버리는 건 좀 명분이 약하기도 하다.

캐릭터 설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가 활을 쏘는것도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원래는 몰래 저격을 하거나, 한두명 빨리 잡거나, 다수의 적이나 차량을 폭발성 활로 잡긴 해왔지만, 여러명을 속사로 해드샷을 날릴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람보가 아니라 람골라스다. 이전 시리즈에선 항상 칼 손잡이에 나침반을 넣어두다가, 이번엔 동료에게 나침반 보여달라고 하는것도 영 아니다. (지금까지 쓰던 폼나는 칼 어디서 엿바꿔먹고 새로 만들어..)

그리고 ‘선교’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을 하시는 분은 영화를 보지 말기 바란다. 이 영화는 마치 ‘선교 반대 영화’같다. 선교자들은 람보의 충고를 듣지 않고, 폭력앞에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들을 구해주는 용병들마저도 그런점들을 어리석다고 비꼬는 내용으로 계속 언급한다. 하지만 거기까진 좋은데 마지막에는 선교를 하러 갔던 사람들이 상대편 군인을 돌로 때려 죽임으로서 스스로를 구하고 그가 해왔던 말과 행동(어떠한 경우라고 살인은 잘못된거라는)을 부정해버리는 결론까지 간다. 그건 나름대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표현 아닐까? 아니면 말고.

어째튼간에 이 영화는 액션영화이고, 액션영화로서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액션영화, 특히 람보 시리즈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추억을 되살리는 용도로는 제격이다. 자잘한( -_-)것이 잘 보이는 사람은 좀 꺼림직할 게 많지만, 그건거 따지면 지는것일지도 모르겠다.

ps.

엔 조라는 배역(턱수염기른 아시아계 용병, 사진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을 연기 한 배우 이름이 Tim Kang이라고 한다. 왠지 한국사람 느낌?

참고
http://www.imdb.com/title/tt0462499/
http://draco.pe.kr/entry/First_Blood
http://draco.pe.kr/entry/First_Blood_Part_II
http://draco.pe.kr/entry/Rambo_III

이보다 더 극한을 다룬 소설은 없을걸? 타우 제로 (Tau Zero, 1970)

타우제로 – 폴 앤더슨 / 천승세 역 / (주)나경문화 / 1992년 초판 / 5,600원
표지에서 포스가 느껴지는가? ^^;

항공기 엔진중에 램제트 엔진이라는게 있다. 일반적으로 항공기의 제트엔진이란 압축기를 이용해 공기를 압축하고, 거기에 연료를 분사해서 폭발시킨 힘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하지만 일정 속력 이상의 고속 비행을 하면 공기의 압력덕분에 압축기가 없어도 엔진 앞부분에서 공기 압축이 일어나고, 거기에 바로 연료를 분사해 폭발시킬수 있다. 그 현상을 이용해 압축기가 없는 제트엔진이 바로 램제트 엔진이다.

바사드 램제트 엔진이라는 개념도 있다. 별과 별 사이를 이동하는 우주선은 수소를 핵융합해야 할정도로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수소가 필요하고, 그러면 더 큰 엔진이 필요하고, 더 큰 엔진은 더 많은 수소가 필요한 모순이 생긴다. 바사드 램제트 엔진이란, 일정 속력 이상의 고속 비행하는 우주선이 우주공간에 미세하게 흩어져 있는 수소를 거대한 수집장치로 모아서 압축하여 핵융합에 이용하는 엔진이다. 이룰수만 있다면 연료를 싣지 않고도 무한히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수 있는 꿈의 엔진이다. 로버트 W 바사드라는 물리학자가 생각해냈고, 속력을 이용해 기체를 모아서 사용하는것이 램제트 엔진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타우제로는 그 바사드 램제트 엔진을 장착한 ‘레오노라 클리스티네’라는 이름의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한 우주선 이야기이다. 이 우주선은 최고의 승무원들과 기술자들, 과학자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33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베타성계를 향해 날아간다. 만약 도착해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면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서 자손을 번식시켜 제2의 지구를 꾸미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주선에는 남녀 각각 25명씩, 총 50명이 탑승해있다.


이 별이다. 어라, Stellarium에는 35.55광년으로 나오네…

레오노라 클리스티네는 램제트 엔진을 이용해 광속을 향해 가속해 가며 우주선 내 시간으로 5년후에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년후 발견하지 못한 작은 성운과 충돌하게 되고, 우주선의 감속장치가 고장난다. 감속 장치를 고치지 못하면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멈출수 없지만, 감속 장치를 고치려면 수소를 수집하는 보호역장을 끄고 선외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보호역장을 끄면 우주에 떠 있는 분자들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해 우주선과 사람들은 순식간에 증발하게 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된 레오노라 클리스티네호는 은하계를 돌아 더욱더 가속을 계속하며 진로를 4천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국부 은하군으로 바꿔 완벽한 진공상태인 우주공간을 찾기 위해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우주선의 시간으로 몇년, 우주시간으로 몇천만년후에 도착한 그곳은 그다지 진공상태가 아니었다. 우주선은 더욱 진공인 곳을 찾아 초은하단과 그 사이의 빈공간들을 찾아가 거의 백억년후 역추진 장치를 수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광속에 너무 가까워진 우주선은 우주선 앞에 존재하는 물질로는 충분히 감속을 할수 없게 된다. (초은하단의 물질만으로는 약간의 속도를 줄인채 다음의 빈공간에 들어가게 되고, 약간 감속된 상태로는 그 거대한 빈공간에서는 다음 초은하단까지 도달하려면 선내 시간으로 몇백년이 흐르게 되니 감속을 시작할수 없는 것이다. -_- 아 설명하기 어려워) 결국 우주선은 이번엔 반대로 물질이 더 풍부한 곳을 찾아 방황하게 되고 우주의 시간으로 수백억년이 흐른다. 그리고 우주는 수명을 다해 팽창을 멈추고 수축을 시작하게 된다. ‘레오노라 클리스티네’호는 우주가 수축을 해 다시 빅뱅을 일으키는 천지창조의 순간에 겨우 감속을 시작하게 되며, 새로 생성된 우주에서 안식처가 될 행성을 발견해 정착하게 된다.

이 정도로 소설의 내용을 정리해도 머리속이 지끈거리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러한 우주선의 항행이야기는 소설의 1/3도 되지 않는다.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우주선내 50명의 인원이 가망없는 무한한 우주비행(속도에 의해 우주에서 격리되어 다른 시간흐름속에서 살게 되며, 지구는 이미 멸망하고 사라졌을 시간에도 멈추지 못하고 약속된 종착지 없이 달려나아가야 하는)에서 어떻게 갈등하고, 방황하고, 절망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우주선내에서 보안 담당인 레이몬트이며, 갈등이 더욱 커지는 후반부가 될수록 우주선내에서 정신적 지주가 되어간다. 우주선은 절대적인 민주주의 사회이나 위기가 닥칠때마다 레이몬트는 독재나 전체주의적 요소를 살짝 도입했다(이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마음에 안들기도 한다) 풀어주는 식으로 자신에게 미움을 향하도록 해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긴장을 유지시킨다. 이 소설의 다른 요소는 사랑이다. 인류의 새로운 식민지를 위해 50명밖에 안되는 남녀는 완전하게 유전자를 공유해야 하고, 그것은 결혼같은 종속적인 개념이 아닌 프리섹스를 의미한다. 그런 상태에서의 사랑과 갈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뭐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이랄까.

타우제로는 폴 앤더슨의 대표적인 ‘하드SF’로 꼽히는 소설이다. 폴 앤더슨은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갈수 있는 소재, 독창적이고 재치있는 주제, 과학적으로 세밀한 표현의 소설을 많이 썼다.(본인이 SF를 늦게 접한 물리학자라서 그런것일지도)그의 작품은 단순 코믹 SF에서 어려운 하드 SF까지 범위도 참 넓다. 시간여행의 모순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타임패트롤 같은건 나중에 여러 매체에서 그의 아이디어를 우려먹었다.

타우제로는 현대 우주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소설이기도 하다. 바사드 램제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항성의 노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우주, 빅뱅, 물질과 반물질등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소설에 녹아있다. 소설이 집필될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초은하단과 그 사이의 빈공간인 보이드에 대해서도 클란과 암흑공간이라는 식으로 소설에 예측되어 있어 읽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정작 바사드 램제트에 필요한 수소의 밀도나 바사드 램제트의 광속까지의 가속능력에 대해서는 현재 점차 비관적인 연구만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주선이 중간에 3G로 가속할때 실내에 필요한 1G말고 나머지 2G를 어떻게 없앴는지는 아주 두리뭉실 설명하고 넘어가는 등 논리적인 아쉬움도 있다.

ps.
레오노라 클리스티네
는 17세기 덴마크의 공주의 이름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오랜기간 감금 상태에서 버틴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주선에 이 이름을 붙인것은 등장인물들이 광속항행상태에서 오랜기간 감옥에 수감된듯한 인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ps.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이야기 하자면, 우주선이 광속에 접근할수록 우주선의 질량은 늘어나고, 우주선 내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질량은 무한대가 될수 없고, 질량이 무거워질수록 가속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우주선은 광속에 무한히 접근할수 있지만 광속과 같아질 수는 없다.

ps.
제목에서의 타우는 소설내에서 쓰인 개념으로, v(속도)의 제곱을 c(광속)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1을 뺀다음, 그것을 제곱근을 한 값이다. 쉽게 말해 타우가 100분의 1이면, 우주선이 100광년을 이동하는 동안 내부 탑승자는 1년이 지난것으로 느낀다. 우주선의 속도가 광속에 무한히 접근할수록 타우는 무한히 0에 접근한다. 즉, 타우 제로란 광속,극한을 뜻한다.

ps.
나는 이 책을 고1때 사 읽었다. 나름대로 과학소년이었기 때문에 상대성이론등 과학적인 부분은 잘 이해했다. 그러나 야한 장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당시에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_-;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Tau_Zero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 ,2006)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뻔 했던 남자, 엘 고어가 혼자 나와 떠드는 다큐멘터리영화. 영화는 엘 고어가 환경과 관련해 전세계에서 한 프리젠테이션과 그의 일상이나 과거사를 담은 조각 필름들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엘 고어는 다양한 과학적 자료와 그래프, 애플의 키노트 프로그램의 부드러운 애니매이션, 그의 언변을 동원해 지구가 얼마나 약하고, 인류가 얼마나 지구온난화를 일으켜 해왔는지, 그리고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효과적으로 알려준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최근 몇년간 얼마나 치솟았는지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래프를 가르키는 장면은 그 절정이다. (이 장면은 심슨 극장판 애니에서도 패러디 되어 유명해졌다)

상단의 붉은색 그래프는 이산화탄소의 농도, 하단의 푸른색 그래프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쫓아서 변하는 온도 그래프이다. 과연 미래의 지구 온도는 어떻게 될까? 우리의 손자손녀들에게 미래는 있을까? 그의 말대로 인류는 천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될것인가?

그러나 엘 고어는 칼 세이건의 믿음을 배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기술에 대한 신뢰감을 보인다. 최신기술들을 잘 적용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수 있고, 우리들의 노력과 정치인들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실현 될수 있도록, 미래와 환경과 아이들을 걱정하는 분들이라면 꼭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An_Inconvenient_Truth
http://www.imdb.com/title/tt0497116/

ps. 도쿄 의정서를 거부하고 테러와의 전쟁에만 몰입한 부시 대통령….대신 엘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구가 좀더 살만해지지 않았을까? 겨우 미국 국민들의 투표로 지구의 운명이 바뀐다는게 좀 억울하네.

기쁨 반 실망 반이었던 에반게리온:서

오늘 용산CGV에서 “에바 신극장판”이라고도 불리는 “에반게리온 서”를 조조로 봤습니다. 결과는 기쁨 반 실망 반이었어요. “서비스 서비스!”라는 멘트가 뭔지 아는 TV판 매니아들에게는 최고의 서비스이자 기회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쓰인 3D는 2D셀화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그 장점을 빛내주고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폭발장면, 더 디테일한 작화, 사도의 세밀한 움직임과 변형, 도시의 화려한 변신등 그야말로 눈요기거리가 TV판보다 100만배 강해졌습니다. 특히 마지막 야시마 작전의 전투장면은 최근 애니들중 가장 박진감 넘쳤던거 같습니다. (사도 Ramiel은 살살 회전하니까 더욱더 라퓨타의 비행석 스럽더군요 쿨럭) 살짝씩 바뀐 스토리와 인물들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성우들 연기도 10년전을 그대로 회상하게 해줄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마야 목소리는 좀 간드러져 진거 같았지만. (원래 중성적인 느낌이 좀더 있었던거 같은데)

하지만, 기존의 경험을 제외하고, 영화적인 면이나 처음 에바를 접하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따지면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에반게리온:서 편은 약간의 변화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TV판의 다이제스트 스토리이기 때문인지, 영화가 에바의 상징적인 장면들로만 강강강강이라는 박자로 편집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야시마 작전에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와 마무리를 위해 ‘전 자신의 의지로 에바를 탄 신지를 믿어요’라든가, ‘일본 전체의 전력과 희망을 모아서 너에게 줄께’라는 유치뽕짝스러운 열혈 대사까지 나옵니다. 일만 터지면 가출을 일삼던 새가슴 우유부단 신지가 뜬금없이 불굴의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죠. 에바는 원래 이런게 아니잖습니까?

영화는 처음 에바를 접한 사람들에게 무진장 불친절합니다. 바다는 왜 빨간지, 도시는 왜 저꼴인지, N2지뢰는 뭔지, 에바는 뭔지, 사도는 뭔지, 에바는 왜 애가 조종하는지, 네르프는 뭔지, 지오 프론트는 뭔지, AT필드는 뭔지, 쟤는 왜 폭주하는지, 겐도는 왜 저리 불량아빠인지, 레이랑 바람피나? 제레는 뭐고, 인류보완계획은 뭐고, 마기는 뭐고, 세컨드 임팩트는 뭐고, 아담은 뭐고, 리리스는 뭐고, 엔트리 플러그는 뭐고, LCL액은 뭔지, 플러그 슈츠는 뭔지, 프로그레시브 나이프는 뭔지, 무슨 무슨 파트는 뭐고, 언비리컬 케이블은 뭐고, 저 달에서 혼잣말하는 미친 소년은 뭐지 등등…. 수많은 정보와 떡밥과 의문이 1초 단위로 지나갑니다. 그런점은 TV판도 마찮가지지만 TV판은 도시풍경을 보여주는 매우 느린 진행이 많고, 에피소드 사이사이 시간에 생각을 하거나 설정을 자기 합리화할 여유가 많았어요. 하지만 극장판에는 1시간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급하게 소화해야 합니다. 기계적으로 따져도 TV판 6화분량, 약 140분과 몇몇 후반부 내용이 90분으로 요약된것입니다. 제 여자친구도 저에게 미리 사전 과외(?)를 받았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하나도 모르겠다더군요.

특히 아까 말한 도시풍경을 보여준다거나, 기타 자잘한 표현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처음 에바를 접한 관객이 캐릭터나 로봇, 도시 등에 감정이입을 하고, 신제3동경시와 미래라는 공간적인 면을 이해할 여유가 무척 촉박합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컴퓨터 그래프나 화면등이 헐리우드 SF영화들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에바의 경우는 이해를 돕기보다는 ‘봐라 더 화려해졌지?’하려는 듯 복잡하기만 한것도 문제입니다. 간결한 그래픽과 문자로도 멋진 디스플래이를 보여주던 에바의 디자인 방식은 넉넉해진 예산으로 증발한겁니까?

입벌어지는 야시마 작전과 다시 돌아온 에반게리온이라는 감격에 여러가지 실망이 합쳐지니, 이거 뭐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기쁨 반 실망 반”입니다. 파에서는 단순히 팬서비스가 아닌 따로 떼어놓고 봐도 훌륭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www.evangelion.co.jp/
http://www.imdb.com/title/tt0923811/
http://en.wikipedia.org/wiki/Rebuild_of_Evangelion

ps1.
3D냄새가 강한 포스터 때문에 전투장면에서 3D티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별로 티가 안나고 자연스러워서 다행입니다. 하긴 다이버스터때도 티가 별로 안났는데….

그건 그렇고, 첫 전투에서 초호기의 모습이 너무 어두워서 형광색 부분만 보이는거…연출은 그렇다쳐도 그것때문에 처음 보는 분들은 이해가 더 힘들거 같아요.

그리고 시대의 흐름때문에, 신지의 검은색 이어폰줄과 카세트식 워크맨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ps2.
전 에반겔리온:파 예고편이 아쉽습니다. 0.5초 단위로 지나가는 에바 시리즈 설명과 새로운 6호 설명, 그리고 몇장면 휘리릭 지나가고, 서비스~서비스! 까지 대략 20초인데…그걸 위해 5분정도 되는 엔드 크레딧을 그다리기엔 좀…엔드 크레딧을 다 보게하려고 뒤에 넣은거 아닐까요!! (음모론)

그래도 조조시간대에 엔드 크레딧 지나가는걸 내내 기다렸다가 서비스~ 서비스! 를 따라하는 인간들이 많았던걸 보면, 확실히 매니아성 애니입니다.

ps3.
영화 중간에, 일본 열도의 전등이 전부 끊기는 장면에서, 해안선을 보면, 세컨드 임펙트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별로 없었던걸로 보입니다 -_-; 게다가 한반도의 북한 영역도 상당히 밝은게 어색하군요; 원래 위성으로 본 한반도 야경은 북한이 컴컴하기로 유명하죠.

ps4.
영화보고나서 찜질방을 갔는데, 세종대왕의 음악적 업적에 대한 TV프로를 하더군요. 그런데 배경음악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비롯한 일본 애니 음악들이 중간중간 나왔습니다. 원래 TV에서 그런짓 잘하지만, 하필 세종대왕의 음악적 노력을 평하면서 그런 음악을 넣다니…제정신인가.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2007)

사실 전 이 영화를 볼 준비를 게을리 한걸 후회하는 중입니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까봐 사전 정보를 전혀 알아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유명하고 작품성을 높게 평가를 받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점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 리드미컬한 연속 목따기와 피의 향연이라니… 제 여친이 같이 영화를 보고 울먹이면서 원망하더군요 -_-; “뭐 이런 영화를 보자고 했어?”

팀 버튼의 작품들은 그동안, 내용의 잔혹성과는 별도로 영상적으로는 그리 잔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상은 한껏 비틀리고 탈색된 동화적인 느낌이었죠.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조니 뎁의 목따기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확실하게 보여줄수 있는 카메라 각도와 클로즈업의 피 튀김으로 보여줍니다. 그 모습은 ‘저러다 죽여서는 안될 사람을 죽이지’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확실히 주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죠. 피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영화는 거의 무채색 분위기지만 피만은 그 색 그대로 보여줍니다.

영화 자체는 무척이나 깔끔하고, 스피디하고, 짜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도 분명하고, 연기와 노래도 다들 잘하죠. 뮤지컬의 약간 과장된 버전으로 말입니다. 조니 뎁은 여전히 조니 뎁 답고, 헬레나 본햄 카터는 다크서클 분장을 하니 해리포터때랑 너무 비슷합니다. 알란 릭맨도 다른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겁줄 때는 해리포터의 스네이프교수랑 똑같아요. 그만큼 배역은 잘 골랐다는 의미도 되죠.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산업혁명기의 노동계층의 몰락은 먼 옛날+외국의 이야기이고, 주인공이 국외로 추방당한후 고생하는 것은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냥 관객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설정부분이죠. 게다가 장면의 잔혹함때문에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음식 먹다가 손가락이 나오는 것은, 인육에 대한 클리세라고 할수 있을까요. “신장개업”에서도 그랬고, 얼마전에 있었던 미국 웬디스의 어떤 여성의 손가락 사기사건도 그렇고 말입니다. 고기를 갈아서 쓰면서 손가락이라니, 다소 말은 안되지만.

ps.

이 영화, 사실 조니뎁의 헤어스타일을 예전에 보고 ‘베토밴인가?’라고 생각했던적도 있습니다;;;

http://www.imdb.com/title/tt0408236/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올블로그 영화 시사회

올블로그의 영화 시사회 이벤트를 통해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보고 왔습니다. 아쉽게도 다 보고나니 정윤철 감독님이 직접나와서 실수로 완성 편집본이 아닌 중간 편집본을 틀었다고 사과하시더군요. “엔딩 음악이 원래 이게 아닌데?”하면서 자신도 나중에 알았다고…;; 어째튼 일반 극장과는 다른 편집본을 봤다는 점에서 감안하고 제 감상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론 스포일러도 좀 있습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착각하며 주변사람들을 돕고 다니는 남자 주인공 황정민과 그를 우연히 만나 TV프로그램 하나 때워보려다가 그에게 점차 반하는 PD인 여주인공 전지현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전지현은 황정민의 순수함이나 착함이 처음에는 시덥지 않지만 점차 그런점에 반하게 되고, 황정민이 말하는 머리속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라던가 하는 단서가 결국 그의 과거를 알게 되는 단서가 되는 뻔한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뻔하고 교과서적인 상황전개에, 슈퍼맨의 환상과 회상과 TV화면이 섞여 정신없는 화면을 계속 보여주며 약간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게다가 슈퍼맨이 말하는 머리속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가 광주 민주화 운동때 박힌 총알이라는 부분이나, 장기기증으로 사람을 구한다는 엔딩에서는 다소 감상적인 억지설정같기도 하죠.(그럼 대머리 악당이 렉스 루터가 아니라 29만원 아저씨? 그래서 황정민이 렉스 루터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지 않고 계속 대머리 악당, 대머리 악당 그러나? 오호라…영화 제작진 똑똑한걸. 참고로 머리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 설정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구성은 뻔하디 뻔하더라도, 영화 자체는 잘 봤습니다. 우선 황정민의 연기가 참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정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게 연기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전지현은 맨얼굴에 담배까지 피고, 긴머리를 휘날리지 않는다고 연기변신을 했다고 뉴스에서 떠들지만, 여전히 긴 몸매와 귀여운 얼굴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구요. 게다가 위에서 남을 내려다보는 퀸카가 아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관찰자 시점의 연기는 정말 연기 변신이죠. (이전 영화와 비교하면 진정 “슈퍼스타이었던 여자”) 그런면에서 전지현도 연기를 잘했습니다.

연기뿐 아니라, 남들은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에 남을 돕는 것이 진정한 슈퍼맨이고, 현재에 노력해서 미래를 바꾼다 라거나, 열쇠를 목에 건 전지현을 보고 문을 여는건 힘이 아닌 작은 열쇠라고 말하는 것 등은, “에반 올마이티” 같은 뻔하면서도 잔잔한 교훈을 줍니다. 한마디로 감동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정윤철 감독님

영화 시사회 전에는 익스트림무비의 편집장이신 다크맨님이 영화계의 불법 다운로드 근절 캠페인의 허실과 장르영화등의 지나친 제작비에 의한 수지타산 문제등 몇가지 주제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이시고 디워 논쟁의 패널로 유명하신 김조광수님이 나오셔서 “후회하지 않아”등의 영화에서 도입한 블로그 마케팅의 교훈에 대해 설명하셨고, 다크맨님이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방면으로 대답하시고 더 자세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관객 입장을 기다릴때 올블로그에서 2007 TOP100 블로그 축하 동영상을 틀어주셨는데, 영화관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제 아이디가 나오는 모습은 참 신기하더군요.

시상식 관련 내용은 다음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