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감정이라는 잘못된 양념이 아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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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맛은 오직 하나'라는 포스터 카피 자체가 만화판 식객과의 괴리를 예고한다.

영화 식객을 보았다. 타짜와 같이 허영만 화백이 수년간 연재하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동명 만화를 영화화 한것이다. 만화 식객은 요리 고증과 자료조사를 통한 세밀한 한국 음식의 표현, 라면이나 부대찌개등도 한국음식으로 치는 자유로운 사고, 경쟁이나 대결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승부를 무의미하게 하거나 초월해버리는 스토리와 주제, 그리고 주인공들의 재치있는 코믹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영화 식객의 경우는 만화 식객과 스토리가 매우 다르다. 운암정에서 경쟁에 밀려난 성찬과 기자 진수, 그리고 오봉주라는 요소는 그대로 가져갔으나, 숙수의 칼을 상품으로 걸고 벌이는 대회가 가장 핵심 줄기이다. “최고의 맛은 어머니 만큼이 많다”라는 주제가 소믈리에 같은 어색한 과장법을 연발하며 승부를 가르는 심사위원에 의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것은 만화에서는 승부에 집착하지만 “음식가지고 장난한 내가 졌다”라면서 부하의 실수까지도 자신의 패배로 인정하고 깨끗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쿨가이 오봉주가 영화에서는 이기기 위해 라이벌의 음식에 복어알의 독까지 넣는 더러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임원희라는 희극 배우를 오봉주로 캐스팅해놓고 어설픈 몸개그로 캐릭터를 가볍게 만든것도 참 문제다. 웃길려면 제대로 웃기던가. 만화의 핵심 코믹 캐릭터인 거지(?) 할아버지, 그리고 보광 레스토랑 식구들이 사라진것도 아쉬움이다.

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만드는것은 허영만 화백도 바라는 일이라고 하니, 그것만가지고 탓하긴 뭐하다. 하지만 더 큰 탓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황복어의 알을 가지고 짜릿한 맛을 내는 것을 사람의 생명을 놓고 칼끝에 놓는 위험한 짓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영화 자체도 감정이라는 ‘양념’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려고만 하는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이라도 낚으려는 듯한 일제시대의 비극이라는 미끼와, 일본인의 좀 오버스러운(?) 사죄와 회상, 스승의 자결, 제자의 죄의식, 선조에 대한 오봉주의 잘못된 생각과 집착, 제대로된 고수들의 대결이 아닌 조선대표 서민음식과 일본 관료가문의 전래음식(?)의 승부가 되어버린 어이없는 마지막 대결, 성찬이 기르던 소의 슬픈 희생, 사형수 이야기까지… 영화는 맛과 향기의 향연이 아닌 눈물의 향연으로 만들려고 꾸준히 시도한다. 상업영화니까 그렇게 만든거겠지만 마치 선생 김봉두의 마지막에서 억지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것같은 거북함은 어쩔수 없이 느껴진다. 그것도 마지막이 아닌 영화 내내.

‘양념’이 잘못되어 요리는 좀 어긋났지만, 이 영화의 ‘재료’는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황복회, 쇠고기 정형, 고기 굽기, 숯이야기, 사형수와 고구마등의 이야기가 원작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준다. 배고픈 채로 보면 미칠거 같은 화려하고 맛깔나는 음식들, 청각을 자극하는 도마질소리와 탕이 끓는 소리, 원작과 느낌이 무척 닮은 배우들도 큰 점수를 받을 부분들이다. 마지막에 허영만 화백의 카메오 등장도 놓치면 안된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해적판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로버트 A. 하인라인 / 임창성 옮김 / 도서출판 잎새 / 1992년 7월 12일 1쇄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92,93년때 갑자기 해외 SF소설들이 많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많은 걸작 SF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다. “여름으로 가는 문”등으로 유명하고 “스타쉽 트루퍼스”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다.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이 책을 6500원에 사서 읽던 날, 나는 밤을 새서 이튿날 고생해야 했고, 그후로 그 감동을 다시 얻고 싶어서 여러번 더 읽었다.

소설은 마치 호주처럼 죄인들이 달로 보내어져 달 세계가 개척되고, 세계연방에 의해 식민통치되며, 과잉 인구에 의해 식량이 부족한 지구를 향해 자력 사출기로 식량이 수출되던 그런 2075년의 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세계 컴퓨터 기사인 마뉴엘은 정부청사내의 중앙 컴퓨터의 수리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정부청사의 컴퓨터가 살아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컴퓨터는 인간의 문학과 유머에 관심을 가지고 주인공을 귀찮게 하는 친구가 된다. 주인공은 항의 집회에서 집회 발언자중 하나인 와이오밍이라는 미모의 여성을 알게 되었지만 행정부 소속 경호원들이 집회를 진압하자 탈출하게 된다. 주인공과 와이오밍, 그리고 그의 스승인 베르나르도 데 라 파스 교수, 이 세사람은 도피도중 컴퓨터 마이크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7년후에 달세계가 식량수출에 의한 유기물 부족으로 식품폭동이 일어날것이라는 예측 계산을 얻어낸다. 세사람은 이를 막기 위해 세계연방으로부터 독립하는 혁명을 계획하고 마이크의 능력을 이용하여 조직을 불리고, 자금을 모으며, 행정부를 속인다. 주인공 마뉴엘은 마이크와 우정을 나누며, 그를 혁명의 지도자로, 또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동료로서 함께하고, 마침내 달세계 행정부를 무너트리고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독립선언을 무효화하기 위한 세계연방과의 전쟁을 치루게 되고, 끝내 성공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교수는 고생끝에 죽고, 마이크는 폭격을 당해 외부와의 연결을 잃어버리자 자아을 상실하고 일반적인 컴퓨터로 돌아가게 된다. 마뉴엘는 마이크의 어설픈 유머를 그리워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미래 달세계(환경에 의해 생긴 가족제도, 인간의 습성, 관습등의 사회요소와 기술)와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혁명이론, 엔지니어링, 천체물리, 인공지능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된 인간사회에 대한 치밀한 예상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마뉴엘이라는 똑똑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적절한 인물에 의해 표현되는 달세계는, 방대하고 지구와 전혀 다르면서도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치 어려운 추리과정을 왓슨박사에 의해 쉽게 풀이되는 셜록홈즈 소설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도 셜록홈즈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60년대 소설이기 때문에 시대적인 한계가 있기는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라고는 인터넷이 아닌 전화선뿐이고, 지금처럼 수많은 서버가 아닌 마이크 혼자 모든걸 관장하며, 컴퓨터의 프로그램 입력은 천공 타이프를 해서 읽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마이크가 책을 읽는것도 전자책이 아닌 책을 도서관에서 꺼내서 페이지 넘겨가며 스캔하는 방식이다. 놀라운것은 아날로그적인 몇가지 묘사를 제외하고는 과학과 기술이 훨씬 발달한 현재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유치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에 곡물을 수출하는 강철통을 마이크가 컨트롤해서 미국의 경도와 위도가 만나는 격자선에 전략 폭격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요즘의 밀리터리 스릴러를 읽어도 느낄수 없는 전률이 느껴지기도 한다.(마이크도 그 장면에서 오르가즘의 의미를 알았다느니 떠들어서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이크는 ‘멍청이가 아닌 친구’를 얻어 자신이 만든 유머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여러분은 멍청이가 아닌가? 아니라면 한번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라도 찾아서(절판된지 오래라 서점에는 없다) 마이크의 유머 친구가 되어 보기 바란다. 유쾌하면서도 외롭고 공평한 비평가인 그는 당신을 반겨줄것이다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The_Moon_Is_a_Harsh_Mistress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雲のむこう, 約束の場所, 2004)

21세기 초의 일본은 정치/외교/군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유니온의 홋카이도와 미군에 의해 통치중인 그외의 지역으로 남북 분단상태. 특히 홋카이도에는 유니온에 의해 끝을 알수 없이 높은 의문의 흰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탑을 동경하는 후지사와 히로키와 사라카와 타쿠야 두 중학생 소년은 그 탑에 도달하기 위해 벨라실라라는 비행기를 비밀리에 조립하고 있다. 그 소년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사와타리 사유리라는 소녀를 좋아한다는 것. 어느날 그 소녀에게 벨라실라를 보여주며 두 소년은 탑에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사유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두 소년은 실의에 빠져 비행기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히로키는 외로히 학교를 다니고, 타쿠야는 아미 칼리지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탑 연구를 하게 된다. 탑은 평행우주를 이 세상으로 불러들여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도구였고, 그 변화 능력으로 무기도 될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탑이 예상외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의식을 잃어버린 사유리의 꿈속으로 평행우주의 신호가 흘러들어가고 있었던 것. 즉 사유리가 깨어나면 세상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사유리가 그들을 버린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히로키는, 그녀를 탑에 데려가기로 다시 약속한다. 그리고 그러기만 하면 그녀가 깨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히로키는 타쿠야를 설득하고, 타쿠야는 아미 칼리지의 연구소에서 사유리를 빼어낸다. 그리고 벨라실라를 조립해 미군과 유니온의 전쟁을 틈 타 탑으로 날라간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구름 저편, 약속 장소”는 초속 5센티미터, 별의 목소리,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등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4년 작품이다. 초속 5센티미터의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훨씬 밝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고, 해피엔딩이라고 할수 있는 결말덕에 더욱 마음에 드는 애니매이션이다. 모든 작품에서 시공간적 이별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점에서는 공통이지만, 이 애니매이션에서는 밝음과 어두움이 밸런스가 맞아 있고, 외로움의 표현도 상대적으로 가볍다. 적당히 비현실과 현실을 섞은 SF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풍경,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의 음악은 매우 어울린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결국 비행기가 2인승이고 팔을 다친 타쿠야가 양보하는 것으로 결말이 되지만, 세 명의 주인공간의 삼각관계 갈등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유리가 깨어나는 전후로 편집이 흐름이 끊기게 되어 있는건 왜인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애니는 여러 편집판이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것일까?

내 친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멋진 비행기나 로봇을 만들기를 꿈꾸다 어른이 되면 현실에 밀려 포기하게 된다. 그런 계기가 바로 이 소년들처럼 고등학생에 진학하거나, 일을 하게 되거나, 이성과 이별을 하게 되거나 하는 등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것들이다. 소년들이 비행기를 하늘로 올리는 꿈, 우리 우주의 평행우주인 애니매이션을 보면서만이 누릴수 있는 꿈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브이가 “영화에서만 가능한” 해피엔딩의 영화를 이비에게 권했듯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어른이 된 소년들에게 이 애니매이션을 권한다.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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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는 보기엔 재미있게 볼수 있는데, 감상을 쓰기에 참 어려운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무수한 상상과 비유, 인용, 과장이 섞여 있다. 셰익스피어, 윌리엄 블레이크, 무정부주의와 전체주의, 폭압정치와 테러리즘, 현대의 영웅의 의미와 잔다르크, 집단 수용소, 생체실험, 집단 공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회의, 동성애, 민족주의, 공포에 의한 국민 제어와 매스미디어의 관계, 고전 음악, 고전 영화, 각종 문화적 아이콘들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이용해서 단순할수 있는 ‘부당한 정권에 대한 테러리스트’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쉬우나, 사실 그렇게 다 섞고나서도 복잡하지 않고 진국으로 느껴지는게 바로 기술인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한때는 자매가 되었냐고 보도되고 난리였지만)는 그런면에서 매트릭스 시리즈 이후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줘 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화려한 데이터 속에 가려진 헛점이 매우 많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의사당폭파를 보러 나오는 민중들은, 사실 그동안 공포에 질려서 꼼짝 못하던 그 민중이라고 볼 때, 갑자기 용기를 드러낸 동기가 불명확하다. 가면 때문일까? 아니면 브이가 보여준 방송국 테러때문에? 혹은 핑거맨이 아이를 죽여서? 브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복수를 하러 다녔지만, 그게 민중에게 동기를 심어주었기엔 약하다. 무언가 하기는 했을텐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고, 후반부에는 갑자기 나탈리 포트먼 능욕(?)으로 감정적으로 빠지다가 최종에는 총알 다 받아주기 액션을 펼친다음 전형적인 영웅 연애물 (영웅은 그녀 품에서 최후를) 로 마무리 지어진다. 독재정권에게 억눌린 민중의 봉기가 쉽지 않다는것과 단순히 군대 앞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는 광주 민주화 투쟁을 겪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핀치 형사의 말대로 “총앞에 나서면 뻔하지”이다. 그걸 스스로 말하고나서 다르게 비켜가는 비현실적인 영화이다. 민중봉기의 어려움을 촛불시위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다고나 할까?

배역들은 정말 멋지다. 휴고 위빙은 얼굴도 나오지 못하는데도 목소리와 가면만으로 상당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브이의 알듯말듯한 개성은 다 그의 노력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일부러 그렇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본 그녀의 영화중 가장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아름답게 나오다가 머리를 잘려서 너무 안타깝다. 그 나이에 몸을 안아끼는 연기를 하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다. 제대로 형사 연기를 해준 스테판 리 아저씨는 이상하게 내가 안보는 영화에만 나오다가 오랫만에 보여서 반가웠고, 방송국 PD 인 스테판 프라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나레이터도 했었네..)

ps.
이 영화는 영국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고, 영국 만화를 원작에다가 배경도 영국이고, 배우들도 영국인이거나 영국식 영어를 쓰고 있다. 최근 해리포터 시리즈를 비롯해서 미국과 영국이 합작을 하거나 미국영화이면서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지고 있는데, 과연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영국 느낌이라는건 미국 사람들이나 영연방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드라마를 보듯이 아련한 추억같은 느낌이라도 있는것일까?

IMDB http://www.imdb.com/title/tt0434409/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V_for_Vendetta (원작)
http://en.wikipedia.org/wiki/V_for_Vendetta_%28film%29 (영화)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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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때, 학교 도서관에 SF전집이 있어서 탐독하곤 했다. 그중 가장 유치했던 제목이 바로 ‘우주~’가 붙는 제목들이었다 “우주전쟁” “우주소년” “우주대소동”… 그중 우주전쟁은  화성인이 처들어오고, 인간은 대포로 막아내려고 발버둥치는 식의 유치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은 마음에 들었다. 첨단 무기를 가진 화성인이 고작 세균들에게 전멸 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참신하고 충격적인 ‘반전’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많은 리메이크 소설과 만화, 영화등으로 만들어졌고, 외계인이 지구를 쳐들어오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시조이며, 한때는 라디오에서 극화했다가 실제상황인줄 알고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일으켰다(순진한 시대였군…)

스티븐 스필버그는 2005년에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다. 50년대에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영화는 특수효과 능력이 부족해서 엉뚱한 UFO로 출연시켰지만, 스필버그는 원작소설대로 ‘삼발이’로봇을 등장시켰다. 그것도 아주 기능적이면서 유치해보이지 않게 개조해서. 게다가 스필버그의 특기인 ‘추격전’을 넣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제대로 멋진 도망치고 생존하기 스킬을 보여준 탐 크루즈를 기용해서 제대로 달리게 했다. 확실히 추격전과 외계인의 무시무시함은 대단했다.

하지만, 2005년에는 19세기식 반전 스토리는 개그였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마스 어택”의 ‘노래로 화성인 죽이기’는 개그로 웃어주었지만, “우주전쟁”의 심각한 분위기에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해 허옇게 말라죽는 외계인은 허무한 엔딩으로 치부했다. 우주전쟁에 대해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의 평은 죄다 “엔딩이 어이없어”였다. 사실 몇백만년을 인류와 지구를 감시하며 침략을 준비했다는 외계인이, 고작 면역을 생각못해서 전멸당했다는건 좀 어이없긴 하다.

게다가 당시 최강의 귀여운 소녀 배우였던 다코타 패닝은 왜 그리 빽빽 소리지르는 것밖에 할줄 모르고, 반항기 아들은 오지랖 넓어서 지가 뭘 하겠다고 군대만 나오면 따라가서 싸울려고 아무것도 눈에 안보인다.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죄다 저만 살겠다고 주인공들을 위협하거나, 엉뚱하게 레지스탕스를 하겠다고 하질 않나, 이쁜 소녀가 보이니까 데려갈려고 하질 않나,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놈들 뿐이다. 헐리우드에서 말썽쟁이라는 탐 크루즈가 영화에서는 불쌍하게 보일 정도다. ‘반지의 제왕’에서 나즈굴 대장도 잡던 미란다 오토는 그냥 처음과 끝에만 잠깐 얼굴을 보여준다. 아쉽다. 임신만 안했으면 외계인 부대장정도는 때려 잡아줄텐데.

고전을 리메이크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여러가지로 진부한 영화이기도 했다. 인간을 먹이로 삼고, 큰 소리지르는 삼발이 로봇은 ‘주라기공원’의 공룡의 이미지 그대로이고, 외계인의 내시경 같은 장비를 주인공들이 피하는 모습도 ‘주라기 공원’의 랩터의 눈을 피하는 장면 그대로이고(심지어 거울-반사되는 주방 문짝-의 동일함까지), 과도한 조명 사용은 스필버그의 외계인 표현의 18번이고, 외계인의 외형은 정말 진부함의 극치이다. 영화의 특수효과와 편집은 더할나위없이 깔끔했고, 삼발이와 붉은 식물등의 원작의 요소를 잘 살린 영화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보기로 기대한 것만 확실하게 보여준’ 영화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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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까 다음 영화부터 출연 안시키지...

 
IMDB http://www.imdb.com/title/tt0407304/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War_of_the_Worlds_%282005_film%29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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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TV시리즈에서 파생된 새로운 OVA시도, Solid State Society는 여태까지중 가장 무난하게 잘 만들어진 공각기동대 애니매이션이다. 난해한 개념을 편집증적으로 집중해서 파다가 애매한 결론만 내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2개의 극장판이나, 긴 호흡과 짧은 호흡, 극장판의 심각함과 원작의 가벼움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볼거 다보여주려다 마지막에 장황설이 되어버리는 2개의 TV시리즈에 비해서 말이다. Solid State Society는 100분 남짓으로  TV시리즈 4개의 길이를 가지면서도, 적절한 흐름을 가직고 있고, 난해한 이념도 적절한 수준으로 맞춰진데다가,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액션연기도 살려놨다. 코믹의 1화에서 정부 교육시설을 공격하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거나, 야한 로봇의 시중받기를 좋아하는 부장의 스승인 대령, 원작에 사용된것과 같은 디자인의 타치코마 등장, “네트는 광대해”라던가 “이것도 꼭두각시인가”등의 대사…등등 원작 코믹팬을 위한 서비스도 잊지 않고 넣어놓았다.

9과의 내부에는 구심점이던 소령이 떠나고, 바토는 겉돌고, 토구사가 리더가되고 규모를 대폭 확장하는 등의 불안정한 요소가 있고, 일본 정계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외부에서는 난민(이 난민이 2기 TV로 보면 내전으로 도망온 한국인들이다), 노령화, 저출산문제 등으로 세금을 고민하는 정부가 있고, 자식이 없어서 양자라도 들여 유산을 상속하려는 노인들이 있고, 아동학대로부터 아동들을 유괴해서라도 구원해보려는 괴뢰회의 의지가 있다. 그 묶임이 점차 하나로 풀려나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시나리오 수준이 참 높아졌다.

단지 아쉬움이라면,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 인형 조종과 액션 약간 보여준거 빼고는 별로 실력 발휘를 안보여준데다가, 괜히 개연성 없이 9과를 나가서 고민만 잔뜩 하는 느낌이 든달까? 그런 아쉬움은 그녀가 두세배는 예뻐진것과 초미니바람을 보여준걸로는 보완이 안된다.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 2007)

“에반 올마이티”가 비디오 가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여름에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상영을 안해서(변두리 극장에서만 하더군요) 볼기회를 놓쳤다.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서 평이 안좋아서 그랬을까?

다들 알다 시피, 이 영화는 브루스 올마이티의 속편이다. 하지만 배우를 바꾸고, 스토리도 ‘올마이티’에 어울리지 않게 별 초능력없이 노아의 스토리 재현이라는 모험을 시도한다. 전편에서 괜히 브루스보다 잘났다는 이유로 당해서 고생한 에반이 주인공이다. 에반이 뉴스 캐스터 그만두고 하원의원에 당선되는데, 지위와 집과 차는 좋아졌지만, 정치적인 힘을 위해 환경파괴를 유발할수 있는 법안을 지지해야 하고, 한창 아빠를 찾는 아들들과는 놀아주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온다. 그런데 가족들이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는 부인의 기도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에반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 나타난 신. 신은 에반에게 생뚱맞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고 에반의 의원생활은 신의 방해로 꼬여간다. ㅋㅋㅋ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은 짐 캐리만큼 경력도 훌륭하고, 잘 생기고, 웃기는 배우긴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약간 짐 캐리보다 포스가 약하달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노아의 모습으로 수염을 달린 모습은 충분히 어울렸고, 특히 노력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왠지 짐 캐리보다 어울렸다.

아쉬운 점은, 스티브 카렐을 비롯한 의원 사무실 사람들이 전부 하이톤의 짜증나는 개그를 한다는 점이다. 에반도 놀랄때마다 땍땍거리는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보좌관도 잔소리하고, 비서 역의 흑인 아줌마는 정말 목소리가 알아 듣기도 힘들다.

이번 영화의 가장 웃기는건, 에반의 수염관련 개그와 동물 개그이다. 동물이 그를 따라다니며 벌어지는 웃기는 상황은 여러번 우려먹지만 참 재미있었다.

이 영화는 아무리 봐도 가족영화다. 특수효과 때문에 블럭버스터급 돈을 퍼부운 가족영화라는 것이 요즘 추세에 안맞아서 실패했을 뿐이지만, 훌융한 가족영화라는데는 개인적으로 이견이 없다. 아이들이 귀엽지만, 노아의 이미지를 따오느라고 아들이 3명이나 되서 캐릭터간 개성이 표현 안되었다는 단점도 있다.

신으로 나온 모건 프리먼이 원래의 브루스 올마이티와 연결점이다. 영화사상 가장 따듯하고, 행동파이고, 유머스러운 신이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에반의 말에 방주짓기 더미 시리즈 책을 주는 센스란 정말 …ㅋㅋㅋ

다만 구약성서의 노아를 모티브로 사용했지만, 구약성서의 잔인한 하느님과 영화의 하느님이 동일 인격의 신인가는, 구약성서를 읽어본 사람에게는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런데…로렌 그라함 이 아줌마 많이 늙었네… 화장빨로 버티시는 느낌…

요즘 영화 너무 피곤하다. 즐기는 영화도 너무 화려하고, 다큐멘터리는 몰입도가 너무 높고, 코메디 영화는 너무 숨쉴틈 없이 웃기려고 노력한다. 그런면에서 에반 올마이티는 요즘 영화 같지 않은 영화이다. 밀도가 낮으면서도 나름대로 충실하다. 에반 올마이티로 2시간동안 부담없이 즐겨보시기 바란다.

공식 사이트 http://www.evanalmighty.com/
IMDB http://www.imdb.com/title/tt0413099/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Evan_Almighty

뜨거운 녀석들 (Hot Fuzz, 2007)

니콜라스 엔젤은 경찰학교부터 수석의 결과만을 보여주던 최고의 경찰이지만, 다른 동료의 400%나 되는 성과로 인해 동료부터 상관까지 모든 경찰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샌포드라는 작은 시골로 전출되어 버린다. 결혼한 아내에게는 일중독이라며 별거통보까지 받고 찾아간 샌포드는 범죄라고는 술주정이나 키우던 백조의 가출이나 아이가 마트에서 과자 훔치기, 시골 할아버지의 신고 안한 무기 소지 정도가 고작인 조용한 마을이었다. 텅빈 증거물 보관소 만큼이나 범죄가 없고, 경찰들은 게으르고, 할일없이 무전기 놀이나 하는 노인들의 마을 방범 단체 NWA까지…그야말로 태평한 이곳에서 니콜라스는 자신이 뭐든 신경과민이 아닌가 자책하고, 새로 생긴 동료 대니와 술마시고 영화를 보는 등 인간적인 면을 찾아간다.그러나 샌포드에는 의문의 사망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단정짓는 분위기를 니콜라스는 점차 수상하게 여기고 조사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하고 허무한(?) 음모를 상대하게 된 니콜라스는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탈출해 총을 빼어드는데…

올해 6월에 개봉해서 블럭버스터들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코메디 영화, ‘뜨거운 녀석’들은 정말 한없이 웃기는 영화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속편격인 이 영화는 역시 다른 영화의 패러디와 여러 웃기는 상황들로 재미를 주고, 마지막에는 화려한(그러면서도 웃긴) 총기 액션으로 멋진 화면을 선사한다. 게다가 감동할정도로 빠르고 재치있는 편집은 이 영화가 그저 바보짓으로 웃기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시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호흡을 맞춘 Simon Pegg과 Nick Frost가 주인공들로 호흡을 맞추어 웃긴 모습을 보여준다. 노력하지만 완벽할수 없는 주인공과 그의 한없이 인간적인 면을 긁어주는 뚱보 조연이라는 점에서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거의 비슷한 컨셉의 주인공들이다.

이 영화에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칼찌르는 산타역)과 케이트 블랫쳇(니콜라스의 헤어진 아내)과 몇몇 영국 배우나 코메디언들이 까메오로 출연하고, 특히 007이었던 티모시 달튼이 느끼하디 느끼한 슈퍼마켓 사장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모습을 보였던, Bill Nighy와 Martin Freeman의 개그를 여기서도 볼수 있다.

‘꼼꼼하게 잘만든’ 그러면서도 충분히 가볍게 볼수 있는 코믹 영화를 보고 싶다면 10번정도 추천하고 싶다.

홈페이지 http://www.hotfuzz.com/
IMDB http://www.imdb.com/title/tt0425112/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Hot_Fuzz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하나 이룬게 없고, 직장에서는 어설프고, 여자친구에게 차이기까지한 숀과 그에게 얻혀 사는 에드, 그리고 무료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든 좀비들. 그들은 어떻게 숀의 어머니를 구출하고, 좀비에게 물린 새 아빠를 처단하고(?), 여자친구였던 리즈를 데리고 안전한(?) 술집까지 도달하느냐! 라는 줄거리의 영화이다. 영화의 성격은 코믹 시트콤+좀비 영화랄까?

수많은 유머와 패러디가 녹아있지만, 특히 ‘새벽의 저주’ 패러디에다가 영국 ‘채널 4’의 시트콤 ‘스페이스드’의 제작진이 스스로를 패러디해 덧붙여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본적이 없는 나로써는 때때로 어디서 웃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DVD 코멘터리라도 본다면 더 많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숀의 어이없는 표정과 그의 상반되면서도 죽이 잘 맞는 에드, 그리고 일상인지 좀비인지 알수 없는 촬영기법들로 나름대로 많이 웃을수 있었다. 가볍게 볼수 있는 영화이다.

올해 여름에 블럭버스터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둔 “뜨거운 녀석들”의 전작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출연 배우들이 이어진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면 무척 재미있다.

특히, 이 앞에 빌 나이 아저씨의 연기는 눈여겨 보기를! ㅋㅋㅋ 이 아저씨 코믹 연기 때문에, 심각한 영화도 웃을 준비를 하는 조건반사가 생길 지경이다.

IMDB http://www.imdb.com/title/tt0365748/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Shaun_of_the_Dead

이퀄리브리엄 (Equilibrium, 2002)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퀄리브리엄은 말로 설명하면 안되는 영화이다. 말도 안되는 액션을 꺼리낌없이 멋지게 보여준다. 어느 액션영화나 주인공의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명과 싸우는 장면을 넣고 싶어하지만  1대 몇십명을 붙일 용기는 없다. 그건 관객들이 즐기기보다 먼저 “에이 말도 안되”라고 먼저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영화 내내 보여주는 “건카타“라는 중국무술에서 따온 스타일리시한 사격술에 의해 그걸 꾸준히 합리화 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포스터에서 처럼 매트릭스를 뛰어넘는 과장법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똥폼이 멋있기 때문에 용서되는 액션”이라는 것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때는 세계3차대전이 긑난 어느 21세기. 전쟁의 충격에 놀란 인간은 그 원인을 찾게 되고, 결국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리브리아라는 도시에서, 감정을 지우는 프로지움이라는 약에 중독된채, 기쁨도 슬픔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한 체계를 지키기 위해 있는 존재가 그라마톤이라는 종교이자 지휘단체이며, 그 아래서 클레릭들이 건카타라는 특수한 사격술의 훈련을 받고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그리고 매일 수많은 “감정 유발자”들과 저항세력들이 프로지움을 먹지 않았고 문화를 즐겼다는 이유로 이단처리되어 사형된다.
최강의 클레릭인 존 프레스톤(크리스챤 베일)은 아내가 사형당했을때 조차 눈물한방울 안흘린 그야말로 전형적인 충실한 클레릭이다. 그는 동료 에롤 패트리지(숀 빈)까지 몰래 프로지움을 복용하지 않자 직접 처형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연히 프로지움을 깨트려 복용하지 않게 되면서 감정이 생긴 그는 큰 혼란에 빠지고 동료들의 의심을 받게 된다. 끝내 그는 아내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고 지하 저항세력의 리더(윌리엄 피트너)와 계략을 짜 그라마톤의 지도자인 신부를 죽이고자 한다.

반가운 얼굴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주인공인 크리스찬 베일은 아역으로 출연했던 “태양의 제국”이나 독특한 모습을 보여줬던 “아메리칸 사이코”등 많은 영화를 보며 좋아했었다. 그는 이번에 감정이 없으면서도 미묘하게 흔들리는 표정연기와 화려한 액션을 잘 보여줬다. 영화마다 100%에 가까운 죽음을 보여주는 숀 빈은 이번 영화에서도 죽음으로써 주인공을 흔드는 역할을 해준다. 반지의 제왕에서 장렬한 죽음까지는 안가지만 그래도 멋졌다. 요즘 많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와주시는 윌리엄 피트너가 저항군 지도자로 나온다.

이퀄리브리엄은 참 잘만든 영화다. 극단적인 종교와 정치, 이분법적 사고, 전체주의등의 광적인 공통점과 그것이 적용된 디스토피아를 잘 표현하고 있고, 감정을 배제하고 논리만 따지는 현상이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도 살짝 걸치고 있다. 액션과 어우러지는 스토리와 편집면에서도 보여줄거 다 보여주면서도 적당히 깔끔하다. 물론 헐리우드치고는 저예산 영화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보이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퀄리브리엄은 어렵게 생각하며 보는 영화가 아니다. 편하게 보려면 한없이 편하게 볼수 있고, 그저 액션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악세사리의 완성도가 높은 영화일뿐이다.

그런면에서 ‘보여줄거 쉽게 보여주기 위해 다른것 쉽게 했다’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억지로 미화시키는 모 영화 제작자의 주장은 이 영화나 “뜨거운 녀석들”을 보면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시원한 총질을 보고 싶은 분은 꼭 보시라!

IMDB http://www.imdb.com/title/tt0238380/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Equilibrium_(2002_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