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올블로그 영화 시사회

올블로그의 영화 시사회 이벤트를 통해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보고 왔습니다. 아쉽게도 다 보고나니 정윤철 감독님이 직접나와서 실수로 완성 편집본이 아닌 중간 편집본을 틀었다고 사과하시더군요. “엔딩 음악이 원래 이게 아닌데?”하면서 자신도 나중에 알았다고…;; 어째튼 일반 극장과는 다른 편집본을 봤다는 점에서 감안하고 제 감상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론 스포일러도 좀 있습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착각하며 주변사람들을 돕고 다니는 남자 주인공 황정민과 그를 우연히 만나 TV프로그램 하나 때워보려다가 그에게 점차 반하는 PD인 여주인공 전지현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전지현은 황정민의 순수함이나 착함이 처음에는 시덥지 않지만 점차 그런점에 반하게 되고, 황정민이 말하는 머리속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라던가 하는 단서가 결국 그의 과거를 알게 되는 단서가 되는 뻔한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뻔하고 교과서적인 상황전개에, 슈퍼맨의 환상과 회상과 TV화면이 섞여 정신없는 화면을 계속 보여주며 약간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게다가 슈퍼맨이 말하는 머리속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가 광주 민주화 운동때 박힌 총알이라는 부분이나, 장기기증으로 사람을 구한다는 엔딩에서는 다소 감상적인 억지설정같기도 하죠.(그럼 대머리 악당이 렉스 루터가 아니라 29만원 아저씨? 그래서 황정민이 렉스 루터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지 않고 계속 대머리 악당, 대머리 악당 그러나? 오호라…영화 제작진 똑똑한걸. 참고로 머리에 박힌 클립토 나이트 설정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구성은 뻔하디 뻔하더라도, 영화 자체는 잘 봤습니다. 우선 황정민의 연기가 참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정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게 연기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전지현은 맨얼굴에 담배까지 피고, 긴머리를 휘날리지 않는다고 연기변신을 했다고 뉴스에서 떠들지만, 여전히 긴 몸매와 귀여운 얼굴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구요. 게다가 위에서 남을 내려다보는 퀸카가 아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관찰자 시점의 연기는 정말 연기 변신이죠. (이전 영화와 비교하면 진정 “슈퍼스타이었던 여자”) 그런면에서 전지현도 연기를 잘했습니다.

연기뿐 아니라, 남들은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에 남을 돕는 것이 진정한 슈퍼맨이고, 현재에 노력해서 미래를 바꾼다 라거나, 열쇠를 목에 건 전지현을 보고 문을 여는건 힘이 아닌 작은 열쇠라고 말하는 것 등은, “에반 올마이티” 같은 뻔하면서도 잔잔한 교훈을 줍니다. 한마디로 감동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정윤철 감독님

영화 시사회 전에는 익스트림무비의 편집장이신 다크맨님이 영화계의 불법 다운로드 근절 캠페인의 허실과 장르영화등의 지나친 제작비에 의한 수지타산 문제등 몇가지 주제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이시고 디워 논쟁의 패널로 유명하신 김조광수님이 나오셔서 “후회하지 않아”등의 영화에서 도입한 블로그 마케팅의 교훈에 대해 설명하셨고, 다크맨님이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방면으로 대답하시고 더 자세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관객 입장을 기다릴때 올블로그에서 2007 TOP100 블로그 축하 동영상을 틀어주셨는데, 영화관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제 아이디가 나오는 모습은 참 신기하더군요.

시상식 관련 내용은 다음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

원스 (Once, 2006)

이번 겨울엔 이상하게 영국 영화를 많이 보게 되는군요. 원스는 우리나라에서 의외의 성공을 거둔 영국의 초저예산 인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해서 인디영화 흥행기록을 세웠습니다. 절반정도는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갔다가 낚인거 같지만요 ㅎㅎㅎ

원스는 스토리가 재미있거나 멋있거나 아름답지도 않고, 홈비디오로 찍은 듯 어색한데다가, 영화의 90%를 차지하는 노래는 듣기 좋은게 아닌 아픈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고, 스튜디오에서 다듬어진 녹음도 아닙니다. 주인공들은 이별을 한 상태이지만, 아예 헤어진것도 아니고, 서로 끌리지만 마음 이상을 나누지도 않습니다. 배우들의 외모나 연기력은 그냥 일반인 섭외 영화 수준입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왠지 흡인력이 있습니다. 소매치기를 쫒아가더니 서로 지쳐서 동전 주워주는 장면이나, 은근히 미소 짓게 하는 인심 좋은 주변 사람들이나(특히 주인공에서 돈을 대여해주던…음악의 꿈을 가졌었던 상담원…킹왕짱), 괜히 여주인공에게 찝적거렸다가 후회하게 되는 장면, 피아노를 선물하는 장면 등, 영화는 뭔가 소시민적이고 끈적끈적하면서 풋풋한 그런 느낌을 내내 줍니다.

최근엔 알면서도 가식적인 이미지와 거짓 감동에 속아주어야 하는 영화나 음악만을 보고 들어서 그런지, 이런 재미와는 담쌓은 영화가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고나서 잊기전에 감상문 쓰려고 했는데, 이제야 쓰는군요.

http://www.imdb.com/title/tt0907657/

톱을 노려라2! 다이버스터 (トップをねらえ2! DIEBUSTER, 2006)를 뒤늦게 보다

사실 예전에 다이버스터 1편은 본적이 있었습니다. “뭐야 이거, 또 메이드야? 쟤는 교복이네? 왜 고양이가 말을 해? 이번엔 초능력 로봇물이냐? 버스터 머신 디자인이 아스트랄이네. 액션이 완전 프리크리인데…” 그리고 안봤습니다. 가이낙스는 역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해….

그런데 페니웨이님의 천원돌파 그레라간 평에 “마침내 완결 에피소드에 이르자 매니아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의 전율을 느낌과 동시에 가이낙스의 뛰어난 팬 서비스에 환호성을 질렀다.”라는 멘트를 읽고서 ‘내가 1편만 보고 속단한건가’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마침 메신저에 DVD들을 질렀다고 리스트 나열한 바보 친구(빌려가라고 자랑하냐..ㅋㅋ)가 있어서 빌려봤습니다.

아아, 확실히 시리즈는 시리즈였네요. 80년대말의 1탄의 ‘암울한 위기의식과 비장한 자기희생’은 없어졌지고 발랄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성장에 대한 갈등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지만, 세계관과 여러 소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작거나 약하다는듯이 거대한 스케일로 터트리고 싸우는것도 같군요.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정말 1편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완전히 달라진 배경과 기계 디자인은 12000년이나 지난 후였다는 배경으로 무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시우키 사다모토로 달라진 그림 스타일은 더 미래라는 설정과 밝은 나나의 성격을 잘 받쳐줍니다.

첫번째 시리즈였던 건버스터의 갈등 요소는 자신이 지키려는 존재가 지키려고 하면 달라지고, 자신마저 잊혀진다는 문제입니다. 초반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천재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성장하는 내용이 있지만, 사실 그 주제를 발전시키는건 후반에 지나친 열혈과 비장함으로 살짝 어긋나 있었습니다. 2번째 시리즈에서는 그러한 문제는 싸그리 뒤집어서, 어렸을 때의 천재가 성장하고 범인(凡人)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평범함 속에서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갈등 해소를 열혈이 가득한 말로 떼우는건 여전하구요. ㅎㅎ

어째튼 만족하며 봤습니다. 패트레이버 극장판 이후로는 오랫만에 본 로봇물이네요. (애플시드도 로봇물로 쳐야할려나…)

ps. 그건 그렇고 그 말하는 고양이는 뭡니까? -_- 아직도 이해 안되네.

막장 슈팅 당근 액션 영화,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Shoot ‘Em Up, 2007)

저처럼 아무리 반사동작이 느린 사람도, 가끔은 스트레스 풀이로 슈팅 게임을 합니다. 슈팅 게임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이 수 많은 악당 조무라기를 막 쏴 싹쓸이 하고 보스와 대결해서 이기는 거죠. 스트레스 풀이 게임은 사실성이고 뭐고 무시합니다. 사실성같은걸 ‘구현 못해서’라기 보단 따질거 다 따지면 스트레스 풀이가 되기 힘들어서죠. 수 많은 슈팅게임이 이 틀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수십년동안.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게 참 난해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현실이지만 그속에서 캐릭터들의 머리카락 하나하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가 보이는 ‘실사’입니다. 영화속 인물들이 비현실적인 액션이나 대사를 어설프게 구사하면 영화는 대번 ‘유치뽕짝’이 되버립니다. 하지만 그 비현실성을 ‘그럴듯하게’ 합리화 시키면 매트릭스가 됩니다. “이퀄리브리엄“은 그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한 걸작 영화이고, “디워“는 그런면에서는 균형잡기에 실패한 영화입니다.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이퀄리브리엄이 탔던 줄타기의 연장선을 밟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퀄리브리엄이무게추로 사용했던 심각함이나 스타일리쉬함을 빼버리고, 그대신 모니카 벨루치의 대담한 섹시함과 업그레이드된 무차별 폭력으로 가속을 시킵니다. 안쓰러지는데는 균형을 잡는거 외에 무작정 속력을 내서 목적지까지만 가는 방법도 있다 이거죠. 반쯤만 성공한거 같지만.

주인공 클라이브 오웬은 이쑤시게 대신 당근 씹고 권총질 하는 성질 드러운 놈이구요.(그러면서 불의는 눈뜨고 못봅니다…) 모니카 벨루치는 한없이 흑장미입니다. 악당들은 조무라기는 낙엽이요, 보스는 일곱번 쓰러져도 여덟번 일어나구요. 액션이든, 이야기 진행과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든 다 말도 안되는 억지를 일부러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생각없이 보면 스트레스 풀이에는 최고인데, 뭔가 따지면서 보는 분들은 스트레스 +200%가 될겁니다.

IMDB http://www.imdb.com/title/tt0465602/

ps. 네이버 영화정보가 요즘 인기라, 거기도 참조 URL로 적어놓으려고 했더니, 바로 성인인증 창이 뜨네요. 영화 내용이 좀 그렇긴 하지만 영화 정보를 인증한다고 얼마나 애들의 동심을 보호하려나. -_- 귀찮게시리.

ps. 영화 보시면 왜 이 글의 제목이 ‘당근 액션’이라고 붙었는지 압니다. -_- 아 그리고, 당근 파는 가게에 한글로 채소 이름들이 나오더군요 ㅋㅋ (방금 스크린샷을 얻었는데, 한글로 나온 채소 이름들이 “당근” “양파” “동 치미국”(?) “타임” “연뿌리” “단무지”(?) “레몬” “오렌지” “포도” “감자”이군요. 쿨럭)

ps. 모니카 벨루치 아줌마는 언제 늙는데요? 내가 고딩때 본 영화에서도 저 모습이었는데?

머리 크기 차이 봐라…

솔라리스 (Solaris, 2002)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제임스 카멜론 제작, 조지 클루니, 나타샤 맥켈혼 주연. 스타니스아프 렘의 원작소설이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72년판 솔라리스는 평이 몇배로 좋으나 못봤으니 패스.

과거에 주인공의 실수로 마누라가 자살했는데, 솔라리스라는 별의 연구용 우주선이 심상치 않아서 가보니, 그곳에서는 마음속 인물들이 되살아나는 엽기 상황.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불완전하지만 겉보기엔 똑같은 마누라가 부활했으니 어쩌면 좋나? 라는게 영화의 컨셉. 복제된 마누라는 ‘자살한 마누라’라는 주인공의 기억때문에 자살을 계속 시도하고, 주인공은 마누라에게 잘못한걸 되돌리고 싶은 마음에 우왕좌왕하다가 끝내 탈출하지 않고 솔라리스에게 안겨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마누라랑 영원한 행복속에 엔딩이라는 결말.

캐스팅 좋고, 편집 좋고, 시나리오 깔끔한데, 뭐랄까…이루지 못하는 로멘스를, 죽어서 저승세계나 환상속에서 이루는 뭔가 맥빠지고 찝찝함이랄까, 그런 영화였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판의 미로“와 일맥 통하기도.

부활한 마누라를 어떻게 살려서 못이룬 사랑을 이루나에 대한 로멘스 영화이고, SF적인 분위기는 그냥 배경일뿐이다. 우주선과 모니터와 유리로된 세트만으로 SF의 분위기를 만든 실력은 깔끔하지만, 역시 SF팬으로써는 아쉬운 영화다. 기대한 사람이 잘못이지만. (사실 포스터의 파란색과 보라색이 섞인 솔라리스 이미지가 너무 예뻐서 본 영화이다.)

헤어스프레이(Hairspray), 즐거운 뮤지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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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날 여친님과 봤는데, 그놈의 감기 때문에 헤롱헤롱 거리다가 이제야 블로그에 끄적거린다. 노래와 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일반적인 대사가 1분도 연속으로 안나오는, 정말 끊임없이 노래와 춤이 나오는 에너지 가득한 영화다. 원작은 안봐서 원작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만으로도 기운 충전하는데는 충분하다. 만족도는 별 4개와 1/4정도?

미국 60년대 댄스 열풍을 배경으로, 춤에 재능있는 뚱보 소녀가 편견을 가진 방송사 제작자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흑인 친구들과 댄스 대회에 나가 승리하고, 미소년 친구와 사랑도 이룬다….라는게 줄거리이다. 영화 줄거리가 인종이나 외모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것이지만, 영화가 전혀 무거워지지 않는다는게 독특하다.

음악도 60년대 풍이 나면서도 구식티 안나게 잘 만들어졌고, 주인공 니키 브론스키도 저 몸매에 저런 춤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춤과 노래 실력을 보여준다. 존 트라볼타가 뚱보 아줌마로 분장…아니 변신을 하고 나오는데, 이건 뭐 “미녀는 괴로워” 저리가라이다. “미녀는 괴로워”의 뚱보 분장신은 몇 장면 안되지만, 존 트라볼타는 그 모습으로 영화 전체를 나오는데다가 하이힐 신고 춤과 노래까지 여러번 춘다. 여장이라는 소재로 웃기지는 않지만, 천연덕스러운 아줌마 연기는 웃음과 탄복을 줄 정도이다. 춤과 대범함과 천연덕스러움 빼면 시체라는 존 트라볼타지만 정말 박수가 절로 나오게 된다.  주인공의 아버지 역으로 나온 크리스토퍼 월킨이 브레인 스톰때보다 너무 폭삭 늙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미셀 파이퍼의 유혹을 못 알아채고 장난감 소개하는 재미에 열을 올리는 귀여운 장난감 가게 사장역을 한다.

진짜 탄복하게 만드는건 미셀 파이퍼인데…춤과 노래야 원래 잘한다지만, 저 아줌마가 50대 맞나 싶은 모습으로 나온다. 클로즈업 하면 주름은 숨기지 못하지만 말이다. 요즘 악역에 물이 올랐나 보다. 그밖에 X맨에서 밀려난 리더(?) 사이클롭스로, 수퍼맨 리턴스에서 주인공의 여자를 가로챈(?) 남자로 나왔던 제임스 마든이 특유의 잘생긴 외모와 과장된 미소로  TV사회자 역할을 한다.

헤어스프레이가 대체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방송국 프로가 헤어스프레이 회사 협찬으로 만들어진 거였다. ‘저 당시 저렇게 썼으면 프레온 가스때문에 오존층 제대로 펑크냈겠네’라고 생각했다…;; 정말 무진장 뿌려댄다.

황금 나침반, 내 데몬은 ‘쥐’? -_-

황금 나침반은 반지의 제왕이후로 무척 기다려지는 뉴라인의 환타지 영화입니다. 특수효과 떡칠(?)에 니콜 키드먼, 에바 그린, 다니엘 크레이그, 이안 맥켈런의 나레이션까지 화려한 캐스팅이니 기대하지 않을수 없지요.

오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각국 언어 옵션중에 한국어 설정도 있고, 우분투 파이어폭스에서도 전혀 이상없이 작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메뉴중에 당신의 데몬을 찾아준다는 것이 있어서 해봤습니다. 20개의 설문을 물어보는데, 번역상의 문제인지 겹치거나 이해하기 힘든 질문도 있더군요.

그런데…결과가…

[이미지 오류]

‘쥐’ 래요…-_-
삐칠테다!

식객. 감정이라는 잘못된 양념이 아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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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맛은 오직 하나'라는 포스터 카피 자체가 만화판 식객과의 괴리를 예고한다.

영화 식객을 보았다. 타짜와 같이 허영만 화백이 수년간 연재하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동명 만화를 영화화 한것이다. 만화 식객은 요리 고증과 자료조사를 통한 세밀한 한국 음식의 표현, 라면이나 부대찌개등도 한국음식으로 치는 자유로운 사고, 경쟁이나 대결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승부를 무의미하게 하거나 초월해버리는 스토리와 주제, 그리고 주인공들의 재치있는 코믹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영화 식객의 경우는 만화 식객과 스토리가 매우 다르다. 운암정에서 경쟁에 밀려난 성찬과 기자 진수, 그리고 오봉주라는 요소는 그대로 가져갔으나, 숙수의 칼을 상품으로 걸고 벌이는 대회가 가장 핵심 줄기이다. “최고의 맛은 어머니 만큼이 많다”라는 주제가 소믈리에 같은 어색한 과장법을 연발하며 승부를 가르는 심사위원에 의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것은 만화에서는 승부에 집착하지만 “음식가지고 장난한 내가 졌다”라면서 부하의 실수까지도 자신의 패배로 인정하고 깨끗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쿨가이 오봉주가 영화에서는 이기기 위해 라이벌의 음식에 복어알의 독까지 넣는 더러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임원희라는 희극 배우를 오봉주로 캐스팅해놓고 어설픈 몸개그로 캐릭터를 가볍게 만든것도 참 문제다. 웃길려면 제대로 웃기던가. 만화의 핵심 코믹 캐릭터인 거지(?) 할아버지, 그리고 보광 레스토랑 식구들이 사라진것도 아쉬움이다.

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만드는것은 허영만 화백도 바라는 일이라고 하니, 그것만가지고 탓하긴 뭐하다. 하지만 더 큰 탓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황복어의 알을 가지고 짜릿한 맛을 내는 것을 사람의 생명을 놓고 칼끝에 놓는 위험한 짓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영화 자체도 감정이라는 ‘양념’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려고만 하는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이라도 낚으려는 듯한 일제시대의 비극이라는 미끼와, 일본인의 좀 오버스러운(?) 사죄와 회상, 스승의 자결, 제자의 죄의식, 선조에 대한 오봉주의 잘못된 생각과 집착, 제대로된 고수들의 대결이 아닌 조선대표 서민음식과 일본 관료가문의 전래음식(?)의 승부가 되어버린 어이없는 마지막 대결, 성찬이 기르던 소의 슬픈 희생, 사형수 이야기까지… 영화는 맛과 향기의 향연이 아닌 눈물의 향연으로 만들려고 꾸준히 시도한다. 상업영화니까 그렇게 만든거겠지만 마치 선생 김봉두의 마지막에서 억지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것같은 거북함은 어쩔수 없이 느껴진다. 그것도 마지막이 아닌 영화 내내.

‘양념’이 잘못되어 요리는 좀 어긋났지만, 이 영화의 ‘재료’는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황복회, 쇠고기 정형, 고기 굽기, 숯이야기, 사형수와 고구마등의 이야기가 원작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준다. 배고픈 채로 보면 미칠거 같은 화려하고 맛깔나는 음식들, 청각을 자극하는 도마질소리와 탕이 끓는 소리, 원작과 느낌이 무척 닮은 배우들도 큰 점수를 받을 부분들이다. 마지막에 허영만 화백의 카메오 등장도 놓치면 안된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해적판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로버트 A. 하인라인 / 임창성 옮김 / 도서출판 잎새 / 1992년 7월 12일 1쇄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92,93년때 갑자기 해외 SF소설들이 많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많은 걸작 SF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다. “여름으로 가는 문”등으로 유명하고 “스타쉽 트루퍼스”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다.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이 책을 6500원에 사서 읽던 날, 나는 밤을 새서 이튿날 고생해야 했고, 그후로 그 감동을 다시 얻고 싶어서 여러번 더 읽었다.

소설은 마치 호주처럼 죄인들이 달로 보내어져 달 세계가 개척되고, 세계연방에 의해 식민통치되며, 과잉 인구에 의해 식량이 부족한 지구를 향해 자력 사출기로 식량이 수출되던 그런 2075년의 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세계 컴퓨터 기사인 마뉴엘은 정부청사내의 중앙 컴퓨터의 수리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정부청사의 컴퓨터가 살아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컴퓨터는 인간의 문학과 유머에 관심을 가지고 주인공을 귀찮게 하는 친구가 된다. 주인공은 항의 집회에서 집회 발언자중 하나인 와이오밍이라는 미모의 여성을 알게 되었지만 행정부 소속 경호원들이 집회를 진압하자 탈출하게 된다. 주인공과 와이오밍, 그리고 그의 스승인 베르나르도 데 라 파스 교수, 이 세사람은 도피도중 컴퓨터 마이크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7년후에 달세계가 식량수출에 의한 유기물 부족으로 식품폭동이 일어날것이라는 예측 계산을 얻어낸다. 세사람은 이를 막기 위해 세계연방으로부터 독립하는 혁명을 계획하고 마이크의 능력을 이용하여 조직을 불리고, 자금을 모으며, 행정부를 속인다. 주인공 마뉴엘은 마이크와 우정을 나누며, 그를 혁명의 지도자로, 또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동료로서 함께하고, 마침내 달세계 행정부를 무너트리고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독립선언을 무효화하기 위한 세계연방과의 전쟁을 치루게 되고, 끝내 성공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교수는 고생끝에 죽고, 마이크는 폭격을 당해 외부와의 연결을 잃어버리자 자아을 상실하고 일반적인 컴퓨터로 돌아가게 된다. 마뉴엘는 마이크의 어설픈 유머를 그리워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미래 달세계(환경에 의해 생긴 가족제도, 인간의 습성, 관습등의 사회요소와 기술)와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혁명이론, 엔지니어링, 천체물리, 인공지능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된 인간사회에 대한 치밀한 예상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마뉴엘이라는 똑똑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적절한 인물에 의해 표현되는 달세계는, 방대하고 지구와 전혀 다르면서도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치 어려운 추리과정을 왓슨박사에 의해 쉽게 풀이되는 셜록홈즈 소설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도 셜록홈즈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60년대 소설이기 때문에 시대적인 한계가 있기는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라고는 인터넷이 아닌 전화선뿐이고, 지금처럼 수많은 서버가 아닌 마이크 혼자 모든걸 관장하며, 컴퓨터의 프로그램 입력은 천공 타이프를 해서 읽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마이크가 책을 읽는것도 전자책이 아닌 책을 도서관에서 꺼내서 페이지 넘겨가며 스캔하는 방식이다. 놀라운것은 아날로그적인 몇가지 묘사를 제외하고는 과학과 기술이 훨씬 발달한 현재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유치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에 곡물을 수출하는 강철통을 마이크가 컨트롤해서 미국의 경도와 위도가 만나는 격자선에 전략 폭격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요즘의 밀리터리 스릴러를 읽어도 느낄수 없는 전률이 느껴지기도 한다.(마이크도 그 장면에서 오르가즘의 의미를 알았다느니 떠들어서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이크는 ‘멍청이가 아닌 친구’를 얻어 자신이 만든 유머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여러분은 멍청이가 아닌가? 아니라면 한번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라도 찾아서(절판된지 오래라 서점에는 없다) 마이크의 유머 친구가 되어 보기 바란다. 유쾌하면서도 외롭고 공평한 비평가인 그는 당신을 반겨줄것이다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The_Moon_Is_a_Harsh_Mistress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雲のむこう, 約束の場所, 2004)

21세기 초의 일본은 정치/외교/군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유니온의 홋카이도와 미군에 의해 통치중인 그외의 지역으로 남북 분단상태. 특히 홋카이도에는 유니온에 의해 끝을 알수 없이 높은 의문의 흰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탑을 동경하는 후지사와 히로키와 사라카와 타쿠야 두 중학생 소년은 그 탑에 도달하기 위해 벨라실라라는 비행기를 비밀리에 조립하고 있다. 그 소년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사와타리 사유리라는 소녀를 좋아한다는 것. 어느날 그 소녀에게 벨라실라를 보여주며 두 소년은 탑에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사유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두 소년은 실의에 빠져 비행기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히로키는 외로히 학교를 다니고, 타쿠야는 아미 칼리지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탑 연구를 하게 된다. 탑은 평행우주를 이 세상으로 불러들여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도구였고, 그 변화 능력으로 무기도 될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탑이 예상외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의식을 잃어버린 사유리의 꿈속으로 평행우주의 신호가 흘러들어가고 있었던 것. 즉 사유리가 깨어나면 세상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사유리가 그들을 버린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히로키는, 그녀를 탑에 데려가기로 다시 약속한다. 그리고 그러기만 하면 그녀가 깨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히로키는 타쿠야를 설득하고, 타쿠야는 아미 칼리지의 연구소에서 사유리를 빼어낸다. 그리고 벨라실라를 조립해 미군과 유니온의 전쟁을 틈 타 탑으로 날라간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구름 저편, 약속 장소”는 초속 5센티미터, 별의 목소리,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등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4년 작품이다. 초속 5센티미터의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훨씬 밝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고, 해피엔딩이라고 할수 있는 결말덕에 더욱 마음에 드는 애니매이션이다. 모든 작품에서 시공간적 이별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점에서는 공통이지만, 이 애니매이션에서는 밝음과 어두움이 밸런스가 맞아 있고, 외로움의 표현도 상대적으로 가볍다. 적당히 비현실과 현실을 섞은 SF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풍경,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의 음악은 매우 어울린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결국 비행기가 2인승이고 팔을 다친 타쿠야가 양보하는 것으로 결말이 되지만, 세 명의 주인공간의 삼각관계 갈등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유리가 깨어나는 전후로 편집이 흐름이 끊기게 되어 있는건 왜인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애니는 여러 편집판이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것일까?

내 친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멋진 비행기나 로봇을 만들기를 꿈꾸다 어른이 되면 현실에 밀려 포기하게 된다. 그런 계기가 바로 이 소년들처럼 고등학생에 진학하거나, 일을 하게 되거나, 이성과 이별을 하게 되거나 하는 등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것들이다. 소년들이 비행기를 하늘로 올리는 꿈, 우리 우주의 평행우주인 애니매이션을 보면서만이 누릴수 있는 꿈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브이가 “영화에서만 가능한” 해피엔딩의 영화를 이비에게 권했듯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어른이 된 소년들에게 이 애니매이션을 권한다.